정부, 지도 해외 반출 ‘불허’… 남북 대치상황 고려 통상보다 ‘안보’ 택했다

입력 2016-11-18 17:56 수정 2016-11-18 21:07

“그럼에도 우리는 믿는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국별 무역 장벽보고서(NTE)’에서 한국의 지도 서비스 시장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 정부가 안보를 이유로 해외 기업들에 지도 서비스를 제한하고 있지만 앞으로 접근을 허용하리라는 기대감이다.

보고서가 나오고 3개월이 흐른 지난 6월 구글은 지도반출 공식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때부터 우리 정부부처들과 국내 기업들은 허가냐 거부냐를 두고 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18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열린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 회의는 그동안 벌어진 격렬한 논쟁을 대변하듯 2시간 넘게 열렸다.

구글의 지도반출은 ‘통상압력’과 ‘안보’라는 예민한 뒷배경을 갖고 있다. 그동안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은 미국과 불필요한 통상마찰이 발생할 수 있는 점, 관련 산업 위축 등을 지목하며 반출 허가를 주장했다. 반면 국토교통부와 국방부는 우리의 정밀지도와 구글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군사안보시설이 노출될 수 있다며 반대해 왔다.

결국 당장의 안보가 미래에 있을 통상압력을 이겼다. 그러나 미국의 압박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과제로 남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반발이 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국 기업을 대변하는 USTR은 올해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지도 반출 관련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했다. 기존 2∼3줄에 그쳤던 것이 올해 보고서엔 2∼3배 정도 늘었다. ‘믿는다’라고 표현한 부분을 두고 한 전문가는 “‘예의’로 포장한 우회적 압력”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구글 지도’를 빌미로 우리에게 무역·통상 불이익을 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날 회의에서도 트럼프 당선 이후 급변할 대미 관계 등을 두고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 참석한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 후 대미 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을 감안해 (지도 반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이번 지도 반출 불허를 계기로 ‘반(反)구글’ 정서를 이끌고 있는 조세회피나 반독점 논란도 재조명될 전망이다. 조세회피 부분은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의 입에서 나왔다. 이 의장은 구글이 데이터서버를 국외에서 운영하는 것을 두고 세금회피 수단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런 기업에 지도 서비스를 허용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도 했다.

유럽에선 이미 구글의 조세회피가 공론화됐다. 영국 정부는 구글이 벌어들인 이익에 비해 지나치게 세금을 적게 낸다는 비난이 일자 1억3000만 파운드(1932억원)의 세금을 추징하기도 했다. 이후 세금을 회피한 다국적 기업에 부과하는 세금을 ‘구글세(稅)’로 부를 정도다.

구글의 반독점 위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 변화도 주목된다. 유럽연합(EU)은 구글이 안드로이드폰에 구글 검색 등을 기본 탑재하게 유도하는 행위가 독점이라고 결론짓고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했었다. 다만 우리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혐의에 면죄부를 줬다.

국내 사업자들은 이번 불허 결정을 환영했다. 공정한 경쟁을 위한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도 사업자들은 똑같은 조건으로 경쟁을 해야 하는데 구글에만 다른 조건을 허용하면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이버 측은 “지도 데이터 반출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공간정보 산업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구글은 유감을 표시했다. 구글 측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관련 법규 내에서 가능한 지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심희정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