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백성이라는 이름의 슬픈 피지배자 ‘民’

입력 2016-11-19 04:14

‘주권이 백성, 즉 국민에게 있음’. ‘민주(民主)’입니다.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 ‘주권(主權)’이지요.

‘백성’은 나라의 근본을 이루는 일반 국민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입니다. 벼슬 없는 일반 평민을 이르던 말이기도 하지요. 민초, 서민이라고도 하는데, ‘국민’들입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 고금의 공통된 가르침입니다. 이것이 이토록 강조돼야만 했던 건 통치자들이 정녕 백성을 나라의 본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방증이겠습니다. 백성의 마음이 떠나면 나라가 설 수 없으니 제발 백성의 뜻을 중히 여기라는 경고였을 것입니다.

‘다스림을 받는 사람, 어둡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 글자가 백성을 뜻하는 民입니다. 사실 그 안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지요. 目(눈 목)에 예리한 침 같은 게 꽂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民은 눈을 바늘로 찌른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눈이 찔려 제대로 볼 수 없게 된 노예 같은 사람을 이르는 글자이지요. 정복자나 지배자가 사람을 마음대로 부려먹기 위해 저지른 악랄한 행태였던 것입니다.

‘민주’사회에 살면서도 죄 없이 벌을 받듯 절망하는 民들을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 저 살 궁리 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民이 눈 찔린 노예쯤으로 보여서 그러는 걸까요.

글=서완식 어문팀장 suhws@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