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 설킨 최순실과의 악연... 한진그룹 잔혹사

입력 2016-11-18 00:05 수정 2016-11-18 00:52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최순실씨와 측근들에게 휘둘리고 그들의 눈 밖에 나 곤욕을 치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한 조 회장(위 사진)과 서울 영등포구 한진해운 본사 1층 모습. 서영희 기자, 뉴시스

한진그룹이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관련한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조양호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경질된 배경이나 한진해운이 사실상 공중 분해된 이유 등을 놓고 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최씨 측근들의 끊임없는 평창조직위 농단, 대한항공 인사 청탁, 조 회장의 결재 거부, 평창 조직위원장 사퇴, 갑작스러운 한진해운 법정관리 등이 이어지면서 한진해운 해체도 최씨 작품이 아니냐는 의심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17일 업계와 사정당국 등에 따르면 한진그룹과 최씨와의 악연은 지난해 10월쯤 대한항공이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출연 요청에 따라 미르재단에 10억원을 기부하면서 시작됐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전경련에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모금을 지시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초 최씨가 조 회장을 만나 거액을 요구했다는 의혹을 한진그룹이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부를 통해 양측간 첫 접촉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악연은 ‘진돗개 논쟁’으로 번졌다. 업계에 따르면 청와대는 지난해부터 호랑이 대신 박근혜 대통령의 반려동물인 진돗개를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로 선정하라는 압력을 조직위에 내려 보냈다. 지난 3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측에서 “개는 안된다”며 이를 거절하자 조 회장은 한달 뒤인 4월 조직위원장 자격으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스위스에 있는 IOC를 방문했다.

당시는 한진해운의 부실이 크게 부각되며 자율협약 절차 문제가 논의되던 때다. 회사 명운이 걸린 급박한 상황에 조 회장은 대통령의 사적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출장을 다녀왔다는 얘기가 된다. 이에 대해 한진그룹은 “조 회장이 별도의 정기 항공편을 타고 현지에서 김 전 장관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진돗개로 바꾸려는 계획은 IOC 측의 계속된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마스코트 변경 요구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이 즈음 평창조직위는 이미 최씨 측근들이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청와대 측은 스위스 업체인 ‘누슬리’에 동계올림픽 시설 공사를 맡기라는 지시를 조직위에 내려보냈다. 누슬리는 지난 3월 최씨가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더블루케이와 협약을 맺은 업체다. 그러나 조직위는 검토 끝에 누슬리 대신 대림산업과 수의계약을 맺었다. 결국 청와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예산 결제 등을 거부한 조 회장은 지난 5월 2일 김종덕 전 장관으로부터 사퇴 통보를 받았다. 지난 3일 조 회장은 “사퇴 압력을 받았다는 기사가 90% 맞다”며 사실상 이를 시인했다.

감정이 상한 양측은 지난 6월 다시 한번 충돌한다. 안종범 전 수석이 대한항공 측에 ‘최순실씨 민원’이라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고모씨를 제주지점장으로 발령내줄 것으로 요청하면서다. 고씨는 최씨의 측근 고영태씨의 친척으로 알려졌다. 이후 사내 성추행 의혹에 연루된 고씨에 대해 안 전 수석은 대한항공 측에 구명을 로비했다는 의혹도 나왔지만 결국 고씨는 사내규정에 의거해 파면 조치됐다. 한진그룹 측이 청와대의 요구를 2번 연속 묵살한 셈이다.

한진그룹에 대한 정부의 보복이 시작된 건 그 이후다. 한진해운 퇴출 과정이 좋은 예다. 회생 과정에서 정부가 수조원의 혈세를 투입한 대우조선해양과 달리 한진해운 청산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난 5월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보고서에도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중 하나를 살린다면 한진이 유리하다고 분석했고, 한진해운은 회생의 전제조건 중 하나인 해운동맹 가입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3000억원의 정부 지원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며 한진그룹과 조 회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결국 지난 9월 1일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으로 인해 물류대란이 이어졌고, 이 때문에 대책도 충분히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채권단이 절차를 급박하게 진행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한진해운은 구조조정 원칙에 따라 결정한 것”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여전히 해명은 미흡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