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호의 골목길 순례자-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영국 주교, 조선을 근대화로 초대하다

입력 2016-11-18 20:39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아래는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왼쪽은 덕수궁, 중앙은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영국대사관, 오른쪽은 서울시의회.
최석호 목사
서울 지하철 시청역 3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덕수궁 돌담길이다. 덕수궁 돌담을 따라 걷다가 왼쪽 골목길로 접어들면 마당세실극장, 영국대사관 등으로 이어진다. 작은 영국 같은 이 골목길 오른쪽에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지은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있다. 꽤 큰 규모인데도 왠지 편안하다.

1890년 영국 해군 군종신부 찰스 코프(Charles John Corfe·1843∼1921) 주교가 제물포에 들어와서 영국 성공회 역사를 시작한다. 코프 주교는 이듬해 부활주일 서학현(西學峴) 터에서 본격적인 한양선교를 시작한다. 서부유학(西部儒學), 즉 서학은 한양에 있었던 남학, 동학, 중학 등과 함께 4학 중 한 곳이다. 조선 중등교육기관 서학 자리에 둥지를 튼 것이다.

현재 서울주교좌성당을 지은 분은 제3대 주교 마크 트롤로프(Mark N Trollope·1862∼1930)다. 그는 영국 건축가 아서 딕슨(Arthur Dixon·1856∼1929)을 부른다. 딕슨은 성바질교회, 성앤드류교회 등 성공회 교회당을 짓는다. 모두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지었다. 서울주교좌성당을 짓기 위한 습작이다. 두 사람은 옥스퍼드운동과 미술공예운동으로 대변되는 낭만주의 사회운동을 이끌었던 동지이기도 하다.

1926년 5월 2일 덕수궁 스카이라인에 어울리면서도 초대교회의 순수함과 단순함을 지닌 교회당인 서울주교좌성당 공사를 마감한다. 그러나 미완성이다. 예산에 발목을 잡혔다. 1993년 버밍엄박물관에서 서울주교좌성당 설계도면을 발견한다. 1996년 5월 2일 70년 만에 완성한다.

기와지붕, 한옥창, 대리석, 벽돌. 트롤로프 주교는 모든 것이 일본식으로 변해가는 데에 반대하면서 기념비적인 교회당을 지었다. 러퍼버러에서 만든 영국 최고의 종, 985시간에 걸쳐 만든 크립트 동판 브라스. 기계로 찍어낸 공산품이 아니라 장인의 땀과 정성으로 빚은 수작업 공예품으로 더욱 빛나는 예배당을 지었다.

영국인 주교와 수공예운동가가 조선 사람을 근대화로 초대하는 예배당이다. 웅장하다. 근대화를 향해 큰 힘을 쏟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편안하면서도 따뜻하다. 인간의 얼굴을 한 근대화를 달성하라고 주문하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트롤로프 주교는 선박사고로 사망한다. 서울주교좌성당 지하성당 크립트에 안장된다. 생명의 공간 한양도성 안에 있는 유일한 무덤이다.

최석호<목사·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