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美 대선’ 추수감사절까지 갈라놓았다

입력 2016-11-18 00:00
미국 뉴욕 맨해튼의 초호화 주상복합 빌딩인 ‘트럼프 플레이스(Trump Place)’에서 16일(현지시간) 한 주민이 건물 이름을 적은 알파벳 명판을 떼어낸 뒤 흔들고 있다. 이 빌딩에 사는 입주민 600여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인종차별 행태에 항의하기 위해 건물명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AP뉴시스
“많은 미국인이 올해 대선을 겪으며 나라가 두 동강 났다고 느끼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정치적 분열이 가족 관계는 물론 추수감사절까지 망쳐 놨다”는 기사를 통해 워싱턴DC와 보스턴, 마이애미와 피닉스, 덴버에서 만난 민심을 소개했다. 특히 미국인들은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추수감사절(24일)을 한 주 앞두고 긴 휴가에 들뜨기는커녕 심각한 선거 후유증을 앓고 있다. 정치 성향이 다른 가족과 연락을 끊거나 고향 방문을 취소하고, 연휴를 간소하게 보낼 계획이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워싱턴DC 출신 낸시 선딘은 매년 어머니, 오빠와 함께 보내던 추수감사절을 올해 혼자 보내기로 결정했다. 콜로라도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매튜 혼은 가족과 함께 모일 예정이던 크리스마스 계획까지 취소했다. 디자이너 루스 도란시는 트럼프 지지자인 예비 신랑의 할머니와 고모가 결혼식에 오지 못하게 이탈리아에서 결혼식을 올릴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모두 대선 때문이다. NYT는 “선거는 끝났지만 미국 전역을 가로지르며 가족들의 분열은 시작됐다”고 해석했다. 친구와 친척, 가족 간에 정치적 성향을 서로 의심하고 분노하는 ‘불편한 연휴’가 닥쳤다는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이 점점 분리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끼리 함께 식사를 하고, 교제를 하고, 결혼을 한다. 결과적으로 다른 계층과의 접점을 잃었고 서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게 지금은 가족 간 분열로도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정확히 반으로 나뉜 민심은 수치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지정학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했던 지역은 전국의 80% 이상을 차지하지만 거주민 수로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 뉴욕 등 대도시에서 지지를 얻으면서 NYT 추산 전 국민의 54%가 클린턴을 지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대선 득표 수도 클린턴이 6180만표, 트럼프가 6080만표로 클린턴이 약 100만표 앞섰지만 승자 독식제에 따라 선거인단 290명을 확보한 트럼프가 승리했다.

로버트 D 퍼트남 하버드대 공공정책학 교수는 “50년 전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에는 다른 계층 사람과 함께할 기회가 있었지만 지금 내 아이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며 “다른 계층을 만날 가능성이 줄었고 이는 미국을 급속도로 양극화시켰다”고 분석했다. 또 “문화적인 양극화가 더 극심해 소수의 미국인만이 이를 극복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날도 대학생들은 트럼프의 공약 중 하나인 이민법을 막기 위한 전국 규모의 시위와 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SNS에 ‘생튜어리 캠퍼스’(Sanctuary Campus·피난처 캠퍼스)란 해시태그를 달며 단체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80여개 대학이 참여한 이 운동에서 학생들은 이민 세관 단속원의 캠퍼스 출입 금지를 요구했다.

글=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