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준동] 국민과 맞짱 뜨려 하는가

입력 2016-11-17 18:41

지난 주말 광장으로 향하는 지하철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인상적인 장면 하나. 민심을 가득 담고 달리던 지하철 안에서 엄마 품에 안긴 한 아이가 인파에 눌려서인지 울기 시작했다. 순간 백발이 희끗한 할아버지의 표정에 미안함이 가득했다. 인상을 찌푸릴 법도 한데 아니었다. “아가야! 미안하구나. 우리 늙은이들이 대통령을 잘못 뽑아 너희들이 고생하는구나.” 팔십 노구를 이끌고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광화문광장이었다. “미래세대에게 정의가 바로 선 대한민국을 물려주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난생 처음 집회에 참여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광장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뿐이 아니었다. 교복을 입은 중고생, 대학생,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 모두 한마음이었다. 나이와 직업, 이념이라는 장벽은 없었다. 자발적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부도덕한 정권에 분노와 상실감을 분출해냈다. 이런 물결이 모여 결국 100만 촛불로 타올랐을 것이다.

무너진 민주질서를 통탄하는 목소리는 가라앉을 줄 모르고 있다. 민심 외면에 오히려 더 거세지는 양상이다. 국민적 분노를 이어가고자 곳곳에서 촛불이 연일 타오르고 있다. 19일 4차 집회에는 수능을 끝낸 고교 3학년생들이 대거 쏟아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공부도 꿈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나라에서 공부해봤자 뭐하냐”고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 부모들은 “내 아이를 이런 나라에서 키울 수 없다”며 다시 나설 태세다. 국민의 뜻이 한 곳에 모이고 국민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다.

1960년 4·19혁명은 대학생들이, 27년이 흐른 1987년 6·10민주화항쟁은 대학생과 ‘넥타이 부대’가 주를 이뤘다. 주도 세력은 다를지 몰라도 4·19혁명부터 6·10항쟁까지 꺼져가는 민주주의에 다시 불을 지핀 주인공은 장삼이사(張三李四)였다. 국민으로 대변되는 이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의 정의가 오롯이 유지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또 다시 29년이 흐른 지금 광장에는 다양한 계층의 자발적 참여자들의 격노한 목소리가 넘쳐 흐르고 있다. ‘민심의 물결’은 주말마다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가고 있다. 민주화가 완성된 게 아니라 허약한 민주주의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대통령과 정치권에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대한민국의 정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일지 모르겠다. 이념적 성향과 계층을 떠나 주권재민(主權在民)의 기본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전국을 뒤덮고 있는 이 질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명확한 답을 내놓기는커녕 버티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의혹만으로 대통령이 하야해야 되나” “주변 사람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 “선의로 추진했던 일” 등 선의·통치행위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듯하다. 부질없는 미몽(迷夢)일 뿐이다.

박 대통령은 3년 전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되는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그리고 “국민행복 시대를 열기 위해 모든 걸 바치겠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헌법은 준수되지 않았고 국민은 현재 행복하지 못하다. 이것만으로 대통령 자격이 없다.

‘역성혁명론’을 주장했던 맹자는 “나라에 백성이 근본이고, 사직은 그 다음이고, 군주는 가볍다(民爲本 社稷次之 君位輕)”고 했다. 나라의 근본인 국민의 마음이 떠났는데 대통령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앉아있을 순 없다. 이제라도 민심을 거스르지 말고 순응했으면 한다. 그래야 국민이 행복해진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