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트럼프發 ‘ETF 광풍’… ‘묻지마 투자’했다 낭패보기도

입력 2016-11-18 04:01

‘충격’의 미국 대선 다음날인 지난 9일. 세계 주식시장의 자금은 한 종류의 금융 상품에 몰렸다. 상장지수펀드로 불리는 ‘ETF(Exchange Traded Fund)’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뉴욕 투자회사 컨버젝스를 인용해 “9일 ETF 거래 고객이 전날의 3배에 달했다”고 전했다. 이날 미국 주식시장에서 ETF 거래량은 평소의 배 이상인 32억주였다.

왜 ETF에 몰리나

우리 주식시장에서도 ‘ETF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같은 날 국내 증시에서 ETF 거래액은 3조6532억원에 이르렀다. 올해 하루 평균 거래금액(7934억원)을 훌쩍 뛰어넘은 규모였다. 가장 많이 거래된 삼성자산운용 ‘KODEX 레버리지 ETF’의 거래량은 9237만9630건, 거래대금은 9621억1078만원이었다.

ETF에 투자자금이 ‘밀물’처럼 밀려든 이유는 불확실한 국제 금융시장 장세와 연관이 깊다. ETF는 개별 종목을 일일이 고를 필요 없이 간단하게 관련 지수를 따라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투자자들이 급격한 지수 변동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잇따르자 안정적으로 흐름을 쫓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셈이다.

ETF의 투자수수료가 0.10% 수준으로 싼 것도 장점이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17일 “미국 대선 후 국내에서 글로벌 ETF에 자금이 집중된 건 달러화가 강해지고 미국 주식시장 인덱스가 많이 올라가는 흐름을 보다 안전하게 따라가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ETF는 펀드지만 개별 종목처럼 주식시장에서 사고파는 게 가능하다. 기초자산(국내 주가지수나 원자재, 해외채권 등)의 가치가 올라가면 이를 따라가도록 설계돼 있다. 예를 들어 국내의 경우 한국거래소나 금융정보 업체 FN가이드, FN와이즈 등에서 발행하는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증권사에서 상장하면 이를 마치 개별 주식처럼 사고 팔 수 있다. 적은 금액으로도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는 한 번에 특정 분야 ETF 수익률까지 일반 투자자들이 쉽게 비교할 수 있는 홈페이지 검색 기능을 연말까지 개발 완료할 계획이다.

일반인에게 아직 생소하지만 국내 주식시장 거래량에서 ETF 자산가치가 약 1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국내 시장에 도입된 건 2002년 10월이다. 당시 4개 종목으로 시작됐지만 현재 230개에 달한다. 올 들어 상장된 ETF만 70여개로 역대 최대다. 상장된 ETF의 순자산 총액은 24조원을 넘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1989년 처음 개념이 등장한 뒤 1993년 1월 ‘S&P 500 종합지수 위탁증권’이 처음 판매됐다. 단일순 한국거래소 ETF팀장은 “세계적으로도 이미 ETF 거래 규모가 헤지펀드를 추월했다”면서 “미국 대선 후폭풍이 끝나더라도 저금리 시대에 ETF의 성장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고 말했다.

모르고 쓰면 독

하지만 ETF 투자자의 불만도 종종 들린다. 상승장에서 매수한 ETF가 되레 적자를 봤다는 항의다. 선물 등 파생상품에 투자해 지수보다 높은 수익률을 목표로 하는 레버리지 ETF, 혹은 지수가 하락한 만큼 수익률을 내는 인버스 ETF가 주된 대상이다. 보다 많은 수익을 추구하려다 상품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지 않은 채 벌인 투기성 투자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유독 ‘파생형 ETF’에 손을 대는 경우가 잦다고 지적한다. 해외 시장에선 자금이 많은 기관투자가들이 일시적으로 ‘파생형 ETF’에 투자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관련 세미나를 할 때 레버리지나 인버스 ETF에 투자하고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 모인 사람 가운데 20%가 넘는다”면서 “소수자금으로 빠른 성과를 내려다 보니 잘 알아보지도 않고 투기성에 가까운 투자를 하다 돈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종류에 따라 작동하는 방식, 지수와 수익의 차이 등이 천차만별인 만큼 공부를 많이 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