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피프티 피플] 병원 커뮤니티 속 존재적 불안감 실감나게 그려

입력 2016-11-18 04:50

아주 실험적인 장편소설이다. ‘송수정’ ‘이기윤’ 등 어디서든 만날 것 같은 평범한 이름을 각 장(章)의 제목으로 내세운 단편들의 집합 같다. 이들을 묶는 끈은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다.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MRI기사 보안요원 등 병원 안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과 인근의 주택가에 사는 인물 군상 50명이 거대한 퍼즐의 조각처럼 서로의 삶에 느근하게 혹은 단단하게 어떻게든 얽혀 있다. 정세랑(32·사진) 작가의 진작 장편 제목은 그래서 ‘피프티 피플’(창비)이다.

“병원 앞에서 2년간 살았다. 그 병원이 주변의 상권, 주택가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커뮤니티에 영향을 미치는 걸 보고 매력을 느꼈다.”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작가를 만났다. 너무나 구체적인 병원 생활 묘사에 전공을 물었더니 국문과 출신이라고. 그는 “간호사 의사 제약회사 등에 다니는 주변의 친구를 괴롭히며 취재한 결과”라며 씩 웃었다.

기승전결 식의 스토리 라인은 없다. 대신 각각의 직업과 처한 위치는 다른데, 현대를 살아가는 위태위태한 불안감이 모두의 삶을 관통한다. 작가는 “불안감에 대한 소설”이라고 정의하며 “가까스로 의지하는 일상이 무너지면 어떡하나, 그걸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최애선’ 편을 보자. 그녀의 며느리는 병원 방사선사로 일하는 자신의 남편에게 점심 도시락을 갖다주러가다 난데없이 맨홀뚜껑에 빠지는 사고를 당한다.

‘조양선’ 편에서 주인공은 이혼해 딸과 함께 산다. 딸이 사귀었던 유부남은 헤어지자는 그녀를 찾아와 끔찍한 ‘이별 살인’을 저지른다. 각각의 인물들은 이렇게 예기치 않은 불행한 사건과 맞닥뜨리는데 그게 황당하지 않다. 워낙 우리 사회에 비상식적인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서일 것이다. 웹진에 조양선 편을 연재한 이후 실제로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충격은 작가에게도 컸다. 그는 “그래선지 조양선 편에서 가지치기를 한 인물들이 더 많이 탄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신과의사인 ‘이설아’ 편이 그렇다. 그는 중소도시의 거점병원에 설치된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시설인 해바라기센터 운영을 자처한 인물이다.

이렇듯 작가는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불안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치유하려는 노력도 보여준다. 작가는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는 덕목으로 예민함을 꼽는다.

후배 의사를 훈련시킨다며 따귀를 때려 고막을 파열시키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이비인후과 의사 ‘임대열’의 행동은 결국 고소당하면서 제동이 걸리는데, 이런 용기를 보여주는 것은 왜소한 체구의 인턴이다.

작가는 “예민함은 관습적인 것으로 넘겨버리지 않아 결국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바꾸는 힘이 된다. 그런 사람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사진=구성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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