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6일 부산 엘시티 비리 의혹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단을 지시한 것은 국정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거센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이 정국 돌파용 반격 카드를 꺼냈다는 평가다.
검찰 조사 대상인 박 대통령이 오히려 법무부를 통해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는 비정상적인 풍경이라는 비판도 많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이날 오후 별도 브리핑을 자청했다. 이 자리에서 “수사 역량 총동원” “신속 철저 수사” “명명백백한 진상 규명” “지휘고하를 막론한 엄단” 등 대통령의 강경한 표현을 그대로 전했다.
궁지에 몰린 청와대가 반전을 위한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정황은 이미 곳곳에서 감지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어차피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는 야권과의 전면전을 각오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에 공백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헌법에 위배되는 절차나 결정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내부에선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엘시티 비리 의혹의 큰 줄기는 시행사 실질 소유주인 이영복 회장이 57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것이다. 엘시티 사업은 인허가 및 사업 추진 과정에서 도시계획 변경, 수천억원대 특혜 대출 등 숱한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이 회장이 최순실씨와 월 1000만원짜리 계모임을 함께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당장 박 대통령의 수사 지시 이후 정치권에서는 부산에 기반을 둔 정치인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수사가 야권 유력주자 측과 여당 내 비박(비박근혜)계 인사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오는 등 정치권 전체가 술렁이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도 국회 추천 총리를 임명해 내각을 통할토록 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특별검사 수사에 응하고 적절한 시점에 3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정 정상화를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할 가능성이 크다.
야권은 “물타기”라고 반발하면서도 경계심을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행사에서 “헌법을 파괴한 대통령이, 국민의 95%가 지탄하는 피의자가 건수 하나 물었다고 큰소리치는 것을 국민은 눈치 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조응천 의원은 “내치에까지 관여하는 모양새에 격분한 시민들이 과격 폭력 시위에 나서면 이를 빌미로 비상계엄을 발동해 판을 엎는 꼼수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물타기 주장이야말로 정치공세”라고 맞받았다. 이번 사건을 ‘제2의 최순실 게이트’라고 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철저한 수사 지시는 낭보다. 그런데 대통령 수사는?”이라고 썼다.
글=권지혜 백상진 기자 jhk@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수사 대상이 수사 지시… 박근혜式 국정 복귀
입력 2016-11-17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