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통령 ‘마이웨이’에… 마음 다잡는 100만 촛불

입력 2016-11-17 05:43

청와대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과 검찰 수사에 정면으로 반격하고 나서면서 평화시위에 참여했던 100만명의 촛불민심이 다시 격앙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문화제 중심이었던 촛불집회가 다양하게 변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촛불정국이 연말까지 장기화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 12일 나타났듯 국민 대다수는 ‘평화로워야 시위의 명분이 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심을 외면하는 듯한 정권 때문에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집회에 참여했던 취업준비생 임모(24·여)씨는 “당연히 평화시위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회의론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헷갈린다”며 “동생이 의경 복무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어떤 게 맞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직장인 최모(30)씨도 “청와대의 무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긴 하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며 “국민들이 한 박자라도 꼬이면 큰일 난다는 강박에 서로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평일에도 산발적인 집회·시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장기전으로 갈수록 피로감이 높아질 가능성도 크다. 당장 19일 열리는 집회에 얼마나 모일지 의견이 분분하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관계자는 “서울을 기준으로 100만명이 안 될 것”이라고 내다본 반면 민중총궐기투쟁본부 관계자는 “서울도 100만명 이상, 전국적으로는 최대 200만명은 모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기에 야권의 ‘헛발질’까지 더해져 국민들을 한숨짓게 했다.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한 지 10여 시간 만에 회담 제안을 철회한 게 대표적이다.

이 같은 상황이 겹쳐지자 SNS에서는 집회의 방향에 대한 열띤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평화적으로 질서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과 “나라가 비정상인 시국에 평화시위, 쓰레기 줍기, 개인행동 금지 등 자기검열을 강화하는 게 맞는 일이냐”는 의견이 팽팽히 부딪쳤다.

정치권에서는 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기도 했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고 “집시법 제12조 내용이 사실상 집회를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로 운영되도록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제12조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 주요 도로가 너무 광범위한 것이 문제”라며 “세종대로∼한강대로 등 대규모 집회가 가능한 거의 모든 도로와 인도가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촛불집회와 대통령 규탄 시위는 다양한 형태로 변주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15일 대학생들이 가면을 쓰고 서울 곳곳에서 벌였던 동시다발 집회도 그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이 다채로운 방식으로 항의·분노·행동을 하되 하나의 큰 물결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제도권 정치의 시간’이라는 표현으로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했다. 전 교수는 “청와대가 버티기 전략으로 상대방의 실수를 기다렸다가 국면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촛불의 불꽃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이를 정치적 공론장에서 담아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섣불리 평화시위를 포기하는 건 위험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병훈 교수는 “평화시위에 대한 고민은 나올 법하다”면서도 “과격한 시위로 변하는 순간 여기에 등을 돌리는 국민이 생기면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한숨 돌리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임주언 이가현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