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미FTA 명줄 잡은 트럼프, 폐기보단 재협상 가능성 커

입력 2016-11-17 04:02

“일자리를 죽이는 협정(job killing trade deal).”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수차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미 FTA로 일자리 10만개를 빼앗겼다고도 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어떤 식으로든 한·미 FTA를 손보겠다는 방침을 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방식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일단 전문가들은 ‘폐기’보다 ‘재협상’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현재 시스템을 유지할 것이라는 반박도 있다.

한·미 FTA 제24조 2항에는 “양 당사국은 이 협정의 개정에 서면으로 합의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협정 폐기 조항도 있다. 한 나라가 상대국에 협정 해지를 희망한다고 서면으로 통보하면 상대국은 180일 이내 협의를 신청하고 이 기간 재협상에 들어간다. 상대국이 재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면 종료를 통보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협정을 폐기할 수 있다.

트럼프가 한·미 FTA 폐기를 추진하면 미국 내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미국은 FTA 같은 관세 관련 협정 체결에 대한 권한이 헌법상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있다. 행정부는 의회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실무 협상에 나서고 협상을 마무리하면 의회 비준을 거쳐 협정을 체결한다. 이어 이행 법안을 만들어 관련 내용을 처리한다. 따라서 대통령이 의회 동의 없이 FTA를 폐기한다면 법적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견도 있다. 미국의 피터슨 경제연구소는 의회에서 관철되지 못하더라도 대통령 재량으로 가능한 ‘무역구제’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협정 폐기를 실행에 옮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양국의 이익 균형을 맞춰 호혜적으로 맺은 FTA를 일방적으로 무효화하기 쉽지 않아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16일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정상적 외교관계 아래에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FTA를 폐기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재협상을 한다면 1순위로 꼽히는 분야가 자동차다. 한·미 FTA 이후 한국의 자동차 부문 무역흑자는 2011년 83억 달러에서 지난해 163억 달러로 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트럼프는 자동차, 철강 등 미국 제조업을 주도하다 쇠락한 ‘러스트 벨트’에서 제조업 부활이라는 공약을 내세워 높은 지지를 받았다. 공약 이행을 위해서라도 한·미 FTA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

법률시장 개방도 주장할 수 있다. 한국은 한·미 FTA 협정에 따라 3단계 개방을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한국의 이행 상황이 미흡하다는 견해를 밝혀 왔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추가적인 관세 인상 등 자국에 유리한 카드를 꺼내는 방식으로 재협상 여론을 모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 연구위원은 “트럼프는 한·미 FTA 협정 이행을 강조하다가 필요한 순간 압력의 강도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미국 내에서 한·미 FTA에 대한 우호적 평가가 많아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회 교류 프로그램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만줄로 한미경제연구소장 등은 이날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의견을 전달했다.

이에 따라 우리 통상 당국이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김극수 원장은 “현대차와 기아차가 미국에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느냐”며 “한·미 FTA의 순기능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