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 의지가 급속도로 사그라진 시기는 2014년 6월쯤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에 안종범씨가 임명된 것도 이때다.
이즈음 청와대는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관계자에게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압력을 가했다. ‘비선실세’에게 밉보인 CJ그룹을 향한 압박 강도도 높였다. 석연찮은 이유로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도 경질됐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안 수석 등 ‘행동대장’들이 청와대 경제·민정수석실 라인을 통해 경제민주화 정책, 인사권, 개별 불공정 사건 제재에 ‘입김’을 불어넣었을 개연성이 높다.
2013년 박근혜정부가 출범했을 때 경제민주화는 경제 부흥을 위한 3대 추진 전략 중 하나로 창조경제, 민생경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14년 대통령 업무보고 때 공정위가 내세운 최우선 정책은 경제민주화 체감 성과 올리기였다.
그러나 안 수석이 등장하면서 청와대 기류가 급격히 바뀌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7월 “경제민주화는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종료를 선언한 셈이다. 이어 공정위는 2015년 대통령 신년 업무보고에서 ‘대·중소기업 상생’을 전면에 내세웠다. 20쪽에 이르는 업무보고 자료에서 경제민주화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나오기 전까지 ‘경제민주화 폐기’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청와대의 자발적 판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드러난 국정농단 의혹을 보면 경제민주화에도 ‘비선실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의혹의 한가운데에 CJ그룹이 있다. 최순실씨 등은 2014년 CJ 경영진 교체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때 진행된 공정위의 CJ 불공정 행위 사건에도 최씨 등이 개입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공정위 전원위원회(1심 재판부 격) 관계자는 16일 “그 전까지 청와대에서 공정위 개별 사건 심결(재판)에 관여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그때(CJ 사건 때)에는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공정위는 CJ그룹 계열사인 CJ E&M에서 만든 영화를 상영할 스크린 수를 늘려주는 등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CJ CGV에 과징금 31억원을 부과했다. 검찰 고발조치도 함께 내렸다.
이 과정에서 심사보고서 초안에는 없던 ‘CJ E&M 검찰 고발 요청’이 최종 심사보고서에 끼어들었다. 이 관계자는 “당시 민정수석이던 우병우 쪽에서 검찰에 고발 조치하라는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과거 심결 사례를 봐도 CJ E&M은 처벌 대상이 될 수 없었다”면서 “격론 끝에 검찰 고발조치를 하지 않기로 하고 저쪽(청와대)을 납득시키는 방향으로 결론내렸다”고 말했다.
CJ 사건을 처리할 때 청와대와 공정위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한 사람은 지금도 현직에 있는 공정위 고위 관계자로 알려졌다. CJ 사건 심결에 외압이 있었던 그해 11월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경질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경질된 당일 아침만 해도 노 위원장이 간부회의를 주재하는 등 자신이 경질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노 위원장은 경질 전후로 방위사업청장으로 있을 때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었다.
청와대의 경제민주화 언급 금지령, CJ 사건 외압 등 당시 공정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이 결국 노 위원장 경질과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경제민주화 폐기·공정위 CJ 제재 뒤엔 안·우 라인”
입력 2016-11-17 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