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변수’에 지구 열 받을라… 암초 만난 파리기후협약

입력 2016-11-17 00:00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른쪽 두 번째)이 15일(현지시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제22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2) 고위급 회의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반 총장을 비롯한 회의 참석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파리기후협약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AP뉴시스

파리기후변화협약이 뜻밖의 암초를 맞았다. “지구온난화는 사기”라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덜컥 당선된 탓이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트럼프 단 한 명 때문에 지구가 더 뜨거워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담은 파리협약이 지난 4일 공식 발효됐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1)에서 196개국이 협약을 체결한 지 11개월 만이다.

파리협약은 산업혁명 이전 수준 대비 지구의 평균기온이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온이 오르면 폭염은 물론 전염병 확산과 해수면 상승이 우려된다.

문제는 트럼프다. 지구온난화를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중국이 만들어낸 사기극’쯤으로 인식하는 트럼프가 내년 1월 백악관에 입성한다. “대통령이 되면 즉각 파리협약에서 탈퇴하겠다”는 공약을 지킬 경우 협약은 사실상 무산된다. 기후변화에 맞선 지구촌의 공조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트럼프에 대한 우려는 지난 7일부터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진행 중인 당사국총회(COP22)에서 터져 나왔다. 15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파리협약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반 총장은 기조연설에서 “기후변화는 심각하고 시급한 사안”이라며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사안을 이해하고 경청하며 선거 당시의 발언을 재검토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는) 틀림없이 올바르고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며 “트럼프와 따로 만나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올랑드 대통령은 AP통신에 “지구온난화를 방치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미국은 제1의 경제대국이자 제2의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파리협약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파리협약은 기후변화에 맞선 미국인과 기업에 이익”이라며 “트럼프와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호소했다.

공은 이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로 넘어갔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지난주 남극을 방문한 뒤 “파리협약의 앞날은 차기 행정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즉시 파리협약을 탈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트럼프가 파리협약 비준을 백지화할 경우에도 1년의 유예기간을 포함 총 4년이 경과한 뒤 효력이 발생한다. 극단적으로 UNFCCC 자체를 탈퇴하는 방법도 있다. 이 역시 유예기간 1년이 필요하다.

트럼프가 취임 후 행정명령을 통해 파리협약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지난 9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의 인준 없이 파리협약을 비준한 점을 거듭 비판해 왔다.

트럼프의 당선이 곧장 파리협약의 폐기로 치닫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파리협약 말고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이 없다는 분석이다. 패트리샤 에스피노자 UNFCCC 사무총장은 “파리협약은 190여개국이 서명하고 100여개국이 비준한 국제조약”이라며 “국제정세의 변화를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모멘텀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