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 친인척에게 예산과 지원금 등 특혜가 흘러가게 해준 조력자로 지목받은 김종(55)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내가 차관 주제에 어떻게 돈을 내놓으라 하겠느냐”며 윗선의 지시를 시사했다. 최씨의 국정농단에 연루돼 검찰의 강제수사를 받는 전·현직 공직자들은 자신이 수동적 역할만 했을 뿐이라고 방어하는 모양새다. 의혹의 정점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시급하다는 기류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16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김 전 차관은 체육계 실세였던 자신에 대해 제기된 많은 의혹을 대부분 부인했다. 김 전 차관은 K스포츠재단 설립 등이 대통령의 뜻에 따른 정책과제 수행이었다고도 강조했다. 이날 검찰에서 “차관은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이지 어떤 결정을 하지 않는다” “장관이 시키고 BH(청와대)가 시키는 대로 한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재단 출연과 관련해 “전국경제인연합이 이런 일도 하는구나, 영재와 은퇴선수를 지원하니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고 국민일보에 밝힌 바 있다.
그는 문체부 고위 관료로서 최씨 개인회사인 더블루케이가 수월하게 운영되도록 K스포츠재단을 좌지우지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김 전 차관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더블루케이가 스위스의 임시경기장 건설업체 등과 만나는 자리에 동석했었다. 다만 김 전 차관은 자신은 최씨와 만나지 않았으며, 비선실세와 대기업 간 거래에서도 역할이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 전 차관은 삼성그룹 측이 승마협회의 제안을 받아 정유라(20)씨의 승마 활동을 지원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떻게 차관 주제에 상식적으로 삼성에 돈을 내놓으라 할 수 있겠느냐”고 항변했다. 김 전 차관은 문체부가 최씨의 외조카 장시호(37)씨 관계 회사인 누림기획, 더스포츠엠 등이 특혜를 받도록 해줬다는 의혹도 부인했다.
앞서 검찰에 불려온 안 전 수석도 박 대통령 지시사항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는 취지로 소명을 시도했었다. 검찰이 확보한 안 전 수석 수첩에는 재단 모금과 관련한 박 대통령의 지시사항들이 꼼꼼히 기록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 박 대통령이 최씨를 ‘최 선생님’으로 호칭하며 “최 선생님에게 컨펌(confirm·확인)한 것이냐”고 묻는 문자메시지도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진=구성찬 기자
김종 “차관 주제에 어떻게 돈 내놓으라 하겠나”
입력 2016-11-17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