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 공격수 김신욱(28·197㎝·전북 현대)은 또 벤치에서 대기했다. 소위 ‘뻥축구’로 통하는 플랜B(차선 전술) 자원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에서 후반 중반까지 0-1로 끌려가고 있었다. 김신욱은 후반 22분 이정협과 교체 투입됐다. 플랜B가 가동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김신욱이 투입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남태희가 동점골을 터뜨렸다. ‘김신욱 효과’는 놀라웠다. 지친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은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는 김신욱을 막느라 헐떡거렸다. 탄탄했던 우즈베키스탄 수비 조직력에 균열이 생겼다. 김신욱은 후반 40분 헤더 패스로 구자철의 결승골을 도왔다. 김신욱을 활용한 플랜B는 이정협을 앞세운 플랜A(최선 전술)를 능가했다.
‘슈틸리케호’는 플랜B 덕분에 2대 1로 역전승을 거뒀다. 실제 한국은 최종예선 5경기를 치르는 동안 최전방 공격수가 직접 기록한 득점이 전무하다. 최종예선에서 한국이 뽑아낸 8골은 모두 2선 공격수나 미드필더들에 의한 득점이었다. 플랜A로 재미를 보지 못한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전에 앞서 이전 최종예선 4경기에서도 플랜A는 잘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순한 포스트 플레이인 플랜B를 가동했을 때 공격력이 배가됐다. 한국은 카타르전에서 전반 1-2로 뒤지다 후반 석현준을 빼고 김신욱을 투입한 뒤 3대 2로 역전승했다.
플랜B를 플랜A로 바꾸는 것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다. 하지만 지난 이란전에서처럼 플랜B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속수무책이다. 플랜 B가 막히면 곧 패배라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플랜Z(최후 전술)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슈틸리케 감독은 점유율 축구를 추구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볼을 소유하고, 상대를 압박하면서 기회를 만드는 것이 슈틸리케 감독의 기본 전술(플랜A)이다. 이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선수들이 체력과 기술, 기본기를 갖춰야 한다. 또 서로 호흡을 맞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태극전사들 중 슈틸리케 감독의 플랜A를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또 대표팀은 A매치를 앞두고 함께 모여 훈련할 시간이 부족하다. 플랜A를 완성시키기 어려운 이유다.
슈틸리케 감독은 우즈베키스탄전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김신욱을 선발 출전시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움직임이 좋은 이정협을 선발 출전시켜 상대 수비수들을 지치게 한 뒤 장신의 김신욱을 투입할 경우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예상했다”며 “롱볼을 이용한 공격은 나중에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김신욱을 선발 출전시킨다면 원하는 만큼 점유율을 확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플랜A의 목적은 단순히 상대를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제압해 골을 넣는 것이다. 또 현대축구에서는 높은 볼 점유율이 승리를 담보하지 않는다.
한국은 남은 최종예선 5경기에서 위기를 자초하지 않으려면 독일처럼 스리백으로 수비를 강화한 뒤 치명적인 역습으로 골을 뽑아내는 전술이나 중앙 미드필더의 공격자원화 등도 고민해 봐야 한다. 세계적인 명장들은 각종 변수에 대비해 통상 3가지 이상의 전술을 준비한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한숨 돌린 슈틸리케호, 플랜Z 없나요?
입력 2016-11-16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