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환자가 숫자를 모조리 외우는 능력을 갖고 있어 도박장에서 큰돈을 벌게 되는 영화 ‘레인맨’의 레이먼드 배빗(더스틴 호프만 분), 자폐성 장애 3급 진단을 받고도 뛰어난 공간지각능력과 암기력으로 한국 최고의 소아외과 의사가 되는 드라마 ‘굿닥터’의 박시온(주원 분) 등은 대중에게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을 친근하게 만들어 준 대표적인 캐릭터다. 서번트 증후군은 의사소통 능력이 낮고 뇌기능에 장애를 갖고 있지만 암산, 예술 등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이는 증상을 뜻한다.
11일 서울 강남구 밤고개로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 목사)에서 자폐성장애 1급 장애인의 껍질을 깨고 ‘천재 화가’로 살아가는 또 다른 서번트 증후군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서번트 증후군 작가 미술전인 ‘열린행성’전(展), 장애 청소년들의 예술창작 전시회 ‘봄(Seeing & Spring)’프로젝트의 대표작가 신동민(21)씨다. 눈썹을 씰룩거리며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신씨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머니 김완옥(51·남서울은혜교회) 집사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는 웃지 못하는 줄 알았다”며 아들과 함께 지나온 삶을 잔잔하게 털어놨다. 걸음마도 옹알이도 또래 아이들보다 느렸던 아들에게 장애가 있단 사실을 안 건 세 살 되던 해였다.
“열심히 치료하고 교육하면 모든 게 해결되고 행복해질 줄 알았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빡빡한 언어·인지·운동 치료 일정에 동민이를 몰아넣었죠. 치료 때문에 집까지 팔았을 정도로 ‘올인’했는데 10년쯤 지나 되돌아보니 남은 건 매일 밤 흘린 눈물, 그리고 아들과 제 얼굴에 내려앉은 다크써클 뿐이더라구요.”
눈물로 얼룩진 시간 끝에 김 집사는 아들이 수백번 수천번 훈련을 받아 “엄마”라는 단어를 말할 때보다 코끼리 한 마리를 그릴 때를 더 행복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씨의 화가 재능은 5년 전 교회에서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마련한 전시회에 출품요청을 받고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날개를 폈다.
“출품을 도와주시던 미술 선생님이 고갱 그림을 몇 장 건네주곤 마음에 드는 걸 그려보라고 했는데 스케치 한 번 없이 몇 분 만에 완성한 거예요. 작은 메모지, A4 용지, 휴지 조각에 낙서처럼 머물러 있던 동민이 재능이 불쑥 튀어 나온거죠.”
전시회 이후 신씨의 작품 세계는 주변 사람들은 물론 전문가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5년 동안 그린 작품만 400여점, 지난해엔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전문가들로부터 “자유롭고 독특한 화풍” “피카소처럼 입체적 묘사를 담아 낸다”는 찬사를 받지만 신씨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행복해 할 뿐이었다.
김 집사는 “화려한 수식어를 얻은 것보다 동민이가 활짝 웃는 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가 됐음에 엄마로서 행복할 따름”이라며 웃었다. 지난 14일엔 발달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밀알복지재단의 홍보대사가 됐다. 김 집사는 “그 동안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희망을 얻었다면 이제는 장애인을 향한 인식을 바꿔 나가는 활동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을 돌려줄 수 있게 됐다”며 기대를 전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화실에 붙여둔 기도 제목을 읽고 작업한다는 신씨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하나님 아버지 그림을 그릴 때 좋은 영감을 주시고 오늘 하루도 인도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장애 껍질 깨고 희망을 그리는 천재화가
입력 2016-11-17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