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필자는 ‘트럼프와 군사전략’이란 글에서 군에 물었다.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 가능성에 바짝 다가선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공약에 어떤 군사전략을 수립하고 있느냐고.
지난 14일 군은 답을 내놓았다. 국방부가 ‘미 대선 결과에 따른 대응방향’이란 자료를 통해 밝힌 전략은 다음과 같다. 트럼프 당선자가 후보 시절 강조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대해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위해서 충분히 노력해 왔다는 점을 설명하겠다고 했다. 주한미군이 북한 도발 억제뿐 아니라 아시아 역내 안정 역할도 수행한다는 것을 강조하겠다고 했다. 방위비 분담금 100% 부담은 형평성에 맞지 않음을 환기시키겠다는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을 적정시기에 전환해 한국 방위를 한국군이 주도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했다. 동맹국에 스스로 자기 나라를 지키라던 트럼프 주문에 대한 응답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는 2017년 예정대로 배치하고 미 전략자산의 상시순환배치를 포함한 확장억제 실행력 제고 방안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확장억제는 북한 핵 위협에 미국이 본토가 위협받을 때 대응하는 수준으로 동맹국을 방어한다는 정책이다.
한·미 간 현안이 조목조목 거론됐지만 대응전략은 기존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진전되지 않았다. 이 정도로 ‘트럼프발(發) 안보 폭풍’을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방부는 트럼프 당선자가 취임하면 후보시절 공약을 철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허망한 기대는 아니다. 벌써부터 선거기간 내뱉은 말들을 주워 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용인 발언도 거둬들였다. 상황에 따라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정치가답다.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후보시절 주한미군 철수론을 공약으로 내건 그는 취임하자마자 철군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결국 포기했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만만치 않아서다. 아시아에서 미·중 간 치열한 세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당시보다 낮다고 볼 수는 없다. 트럼프 당선자가 돈을 가장 중시하는 사업가지만 군사력이라는 하드파워의 힘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내 기류는 심상치 않다. 트럼프의 비합리적 발언에 환호한 미국민들에게서 피로감이 느껴진다.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며 지불해온 막대한 비용을 더 이상 부담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이 피로감은 동맹국에 추가 부담을 요구하는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 때문에 국방부는 트럼프 정부가 한국군 자강(自强) 노력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강 노력은 미군 의존도를 줄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미 전략자산의 순환배치 논의는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전과 달리 그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한반도 유사시 병력 69만명과 전투기·함정 수천대를 투입하기로 한 전시증원계획도 대폭 축소할 수 있다.
다시 국방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박근혜정부 들어 정예·첨단·기술군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한 국방개혁의 동력이 사라진 듯하다. 전쟁 패러다임이 바뀐 지 오래지만 군 구조는 60여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기획득 사업은 북한의 도발을 뒤쫓아 가는 ‘추종형 사업’이 된 지 오래다. 밤낮 적과의 전쟁을 상정하고 적의 허를 찌를 전략을 고심하기보다 진급에 더 급급해하는 ‘행정형 군인’들이 주요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얼마 전 한 세미나에서 만난 예비역 장군은 “트럼프의 당선이 도리어 군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개혁을 하지 못하는 군에 ‘외부 충격’이 환골탈태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트럼프 충격이 군의 쇄신을 끌어내길 기대한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내일을 열며-최현수] 트럼프와 군사전략Ⅱ
입력 2016-11-16 1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