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하고 고뇌하고 갈망하라

입력 2016-11-16 20:38
죄를 지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절망 가득한 표정으로 에덴동산을 떠나고 있다. 이탈리아 화가 마사치오(1401∼1428)가 피렌체 브란카치예배당에 그린 ‘추방’.
태초의 인간이 죄를 지은 후 가장 처음 느낀 감정은 수치였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뒤 벗은 몸을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가렸다(창 3:6∼7).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우리는 이 죄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리는 체제의 부조리 속에서 모욕감을 느끼고, 권력의 비리를 목격할 때도 나의 것인 양 얼굴을 싸맨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앞에서 우리는 수치심을 느꼈다. 부패한 권력에 어떻게 저항해야할지 고뇌하며 공의로운 사회를 갈망한다. 수치, 고뇌, 갈망에 대한 성경적 해석을 담은 신간을 펼쳐본 뒤 저자 3명에게 현재적 의미를 물었다.

수치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
(홍성사)는 우선 모든 인간이 부끄러움 앞에 자유로울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보험계약서에 대필로 서명한 K는 한사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L집사는 남편의 폭력을 꽁꽁 숨긴다. M교회 성도들은 우울증을 앓던 청년이 자살하자 덮으려고만 한다.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었던 태초의 아담과 하와처럼 모두 수치심을 외면하려 든다. 부정을 일삼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현 상황과 오버랩 돼 씁쓸하다. 하나님이 사람과 공동체를 만지자 상황은 변한다. 부끄러움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회개하고 회복한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이다. 아내 앞에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고… 죄를 짓고, 죄의식을 느끼고, 죄를 겸허히 하나님 앞에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다.”(255쪽)

하나님은 우리가 돌이킬 수 있도록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주신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회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구유선 작가는 16일 “최순실 게이트로 일어나는 거대한 사회적 분노가 부끄러움이라는 순결한 감정을 고양시켰으면 한다. 부끄러움은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구 작가가 지난 6년 동안 교회 등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반소설(反小說·전통적인 소설의 형식이나 관습을 부정하고 새로운 기법을 시도한 소설)이다. 공동저자인 엄진용(수원 제일좋은교회) 목사의 설교가 책 속에 녹아있다.

고뇌

‘고뇌가 없다는 것’
(포이에마)은 혼돈의 시대에 우리가 회복해야할 초월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천정근(안양 자유인교회) 목사가 매주 원고지 100매 안팎으로 10년 가까이 쓴 설교 중 묵시적 사유를 담은 21편을 모은 것이다. 저자는 지상의 권력과 하나님 나라는 길항적이라고 본다.

“국가에 속하여 살면서 동시에 속하지 말아야 하는 신앙을 간직해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 기독교인들은 싸움의 방식은 다를지라도 싸우는 대상만큼은 분명히 해야 할 때에 와 있습니다.”(402∼410쪽)

불의 앞에서 침묵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책에는 러시아 모스크바국립대에서 톨스토이로 문학석사를 받은 저자의 인문학적 양분이 깊게 배어있다. 저자는 “최순실 게이트로 지상 권력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났다”며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체제를 전복적으로 사고하고 재구성할 기회”라고 했다.

갈망

갈망은 목마름으로 물을 찾듯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갈망’(국민북스)은 저자가 인생에서 맞은 갈망을 소재로 영적 목마름을 다룬다. 창조주를 갈망하는 인간의 근원적 목마름이다. 갈망에 대한 시적 묘사와 성구가 어우러진 본문은 단숨에 읽힌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나를 만드신 분에게로 가야 한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 그래야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된다. …갈망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229쪽)

저자인 손종태(고양 진행교회) 목사는 ‘태초에 갈망이 있었다’로 갈망의 연대기를 맺는다. 손 목사는 “우리는 어두운 영이 지배한 이 사회의 단면을 목도하고 있다”며 “하나님의 영이 운행(창 1:2)하시도록 우리가 하나님을 갈망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강주화 노희경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