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의 오랜 측근인 장순호(64)씨는 지난 2월 하순 최씨의 전화를 받았다. “누가 명함과 전화기 한 대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곧 최씨의 수행비서로 알려진 엄모(28·여)씨가 봉투를 들고 왔다. 그 속에는 최씨가 독일에 세운 ‘비덱(Wedec) 스포츠’ 한국지사 영업이사 직함이 찍힌 명함과 K스포츠재단 직원 명의로 개설된 대포폰이 들어 있었다. 당시 장씨는 최씨의 제안에 따라 광고대행사 ‘플레이그라운드’의 재무이사로 일하고 있었다. 올 들어 현대차·KT 등 대기업 광고를 대거 수주한 플레이그라운드는 최씨가 실소유주라는 사실이 굳어지는 상황이다. 장씨는 1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비덱인지 뭔지 알 수가 없어서 (최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연결이 안돼 나중에야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엉겁결에 존재하지도 않는 비덱 한국지사 책임자 직함이 생긴 것이다.
최씨는 하루 이틀 뒤 다시 연락해 “SK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이유를 물으니 “아시안게임·올림픽 준비를 위한 꿈나무 육성 사업을 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왔다. 장씨는 비덱 이사 명함을 들고 서울 종로구 SK 본사 건물을 찾아가 로비에서 정현식 당시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과 박헌영 과장을 대면했다. 세 사람은 SK 박모(52) 전무를 만나 ‘2020 도쿄올림픽 비인기 종목 유망주 지원 사업’ 관련 투자를 요구했다. 정 전 사무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2월 29일 처음으로 SK를 찾아갔다. 최씨가 ‘SK와 이야기가 다 됐으니 가서 사업 설명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었다. 세 사람은 며칠 후 다시 박 전무를 찾아갔는데, 이 자리에서 정 전 사무총장이 “부담 갖지 말고 형편 되는 대로 지원해 달라”고 말했다고 장씨는 기억했다. 이후 K스포츠재단 측은 2∼3차례 더 SK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장씨에게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고 한다. 비덱 한국지사는 애초부터 SK 돈을 받아내기 위한 명목에 불과했던 셈이다.
최씨 측은 SK에 80억원을 요구했지만 K스포츠재단이 내민 사업제안서는 SK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잡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돈을 재단이 아닌 비덱으로 송금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이에 SK가 “사업 진행 경과를 보면서 지원하겠다”며 조건을 달자 최씨 측이 결국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다고 한다.
황인호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崔, 측근에 명함·대포폰 주고 “SK와 얘기 됐으니 찾아가라”
입력 2016-11-16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