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요구’→ 朴대통령 ‘지시’→ 안종범 ‘행동’

입력 2016-11-16 04:01
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현관에 모인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민주노총, 참여연대 대표자들이 피켓을 들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씨 등의 고발을 요구하는 모습이 유리창문에 비치고 있다. 윤성호 기자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를 통해 비선실세 최순실(60·구속)씨가 대기업들을 현금인출기로 삼아 수시로 돈을 빼내려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은밀한 만남을 하고 나면 안종범(57·구속)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대통령의 뜻을 앞세워 대기업을 압박해 기부금을 받아내는 패턴이었다. 이렇게 마련된 자금의 종착지는 최씨와 연관된 재단이나 법인이었다. 최씨가 박 대통령에게 모금 필요성을 설득해 대기업 자금이 최씨 소유 재단으로 흘러가는 일련의 수금 구조를 설계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15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해 7월 박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 7명이 독대한 것과 올 2∼3월 사이 이뤄진 2차 독대의 양상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독대에서는 대기업에서 송금한 기부금이 공익법인을 거치도록 하는 중간 단계가 존재했다. 그러나 올해는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최씨 측이 직접 대기업과 접촉해 돈을 받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문화융성 등에 대한 적극적 후원을 부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단 설립이 지지부진하자 안 전 수석이 박 대통령의 질책을 받았다는 후문도 있다. 이후 대기업들이 두 재단에 774억원의 기부금을 내고, 미르재단(2015년 10월 출범)과 K스포츠재단(2016년 1월 출범) 관련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미르·K스포츠재단을 뒤에서 움직인 실력자는 최씨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 재단 출범 당시만 해도 기업 기부금이 최씨에게 직접 흘러들어가는 구조는 아니었다. 기업들의 금전적 지원에도 공익을 위한 재단 설립을 돕는다는 대외적 명분이 있었다. 검찰 조사를 받은 몇몇 대기업 총수들은 “재단 기금 출연은 대가성이 없는 지원이었다”는 취지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지난 2월 박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 간 2차 독대 뒤부터 기업의 돈을 뜯어내 개인 주머니를 채우려는 최씨 측 요구가 한층 노골화됐다. 박 대통령은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가 열렸던 지난 2월 17일 전후로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들과 개별 면담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스포츠 사업 등에 대한 지원을 당부했다고 알려졌다.

이후 박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을 한 안 전 수석이 SK, 부영, 롯데 등에 전화를 걸거나 직접 만나 지원을 요청한 정황이 포착됐다. 최씨 측근인 장순호(64)씨, 고영태(40)씨 등도 나서서 기업과 접촉해 사업을 제안하고 지원을 요구했다. SK에는 독일에 있는 최씨 개인회사로 직접 송금을 요구해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형식적으로나마 재단을 거쳐 기업 자금을 받으려던 최씨가 올해부터는 이 단계를 건너뛰고 직접 돈을 챙기려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권력을 등에 업고 기업을 사금고처럼 생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