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최순실 게이트’ 수사 대비용 종합 시나리오를 작성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 문제의 문건을 발견한 것이다. 증거 인멸 방법까지 언급돼 있다. 조직폭력배의 범죄 은폐 행태와 닮아 있다. 청와대가 국정 농단에 이어 조직적 은폐까지 시도한 셈이어서 가히 충격적이다.
문건은 지난달 16∼18일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 보도된 같은 달 24일 이전이다. 문건은 ‘미르·K스포츠재단과 비선실세에 대한 검토 의견’과 ‘법적 검토’ 2가지다. ‘재단 설립과 대기업 모금에 법적 문제가 없다’ ‘최씨가 자금을 용도와 다르게 썼다면 문제가 있지만 그런 정황은 없다’ 등의 검토 의견이 담겨 있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전달하라’는 조언도 포함됐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만약 어느 누구라도 자금 유용 등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박 대통령은 잘 짜인 각본을 읽어내려가며 반격을 꾀한 것이다. 문건에는 문자메시지와 녹음 파일 삭제와 복원 여부 등도 포함돼 있다. 모 그룹의 증거 인멸 기법을 예로 들기까지 했다. 청와대가 국가기관에서 범죄 집단으로 전락한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문건을 누가 지시해 누가 작성했느냐는 것이다. ‘지시사항에 대해 법적 검토해보니’ ‘말씀하신 것을 검토해보니’라는 대목에서 박 대통령이 대응 방안 마련을 직접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 법적 검토 부분에선 민정수석실이 해당 문건을 작성했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이 대목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떠오른다. 또 정 전 비서관이 사진 파일로 문건을 보관했다는 점에서 최씨에게도 흘러갔을 것으로 보인다. 종합해보면 대통령의 지시로 우 전 수석이 문건을 작성하고 정 전 비서관 등을 통해 최순실 집단이 이를 공유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우 전 수석이 문건 작성 등에 관여한 것이 사실인 경우 증거 인멸이나 증거 인멸 교사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 검찰이 박 대통령을 같은 혐의로 조사하는 것을 배제해선 안된다. 검찰에겐 명예회복을 위한 ‘마지막 총알 한 발’만이 남아 있다.
[사설] 청와대의 조직적 은폐 의혹 낱낱이 밝혀야
입력 2016-11-15 1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