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가지 매력 지닌 겐로쿠엔
지난 8일 일본 이시가와현 가나자와(金澤)의 겐로쿠엔(兼六園)을 갔다. 겐로쿠엔은 6가지 매력을 겸비한 정원이란 뜻이다. 오카야마의 고라쿠엔, 미토의 가이라쿠엔과 함께 3대 정원이라고 한다.
가나자와성 맞은편 렌치몬(蓮池門)을 지나 겐로쿠엔에 들어서자 폭포 소리가 들렸다. 폭포가 어디 있는지 주위를 둘러봤다. 아담한 크기의 연못 주변에는 붉고 노란 단풍이 한창이었다. 석등의 이끼마저 초록이 바래 연둣빛이었다. 팔뚝만한 잉어들도 가을의 여유를 즐기는 듯 유유자적 노는 모습을 보니,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물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그제야 폭포가 눈에 들어왔다. 고요한 호수에 요란한 물줄기를 꽂는 것이 미안한 듯 붉은 단풍나무 뒤편으로 물러 서서 하얀 물보라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호수와 석등에 역동적인 폭포라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폭포가 숲그림자에 살짝 가려진 덕분에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6가지 상반된 매력을 겸비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겐로쿠엔의 6가지 매력이란 밝고 활기찬 광대함과 고요하고 심오한 유수함, 사람 손길이 엮어낸 섬세함과 오랜 자연 풍광이 빚어내는 창고(蒼古)함, 가까이서 보는 샘물과 드넓게 둘러보는 조망처럼 상반된 경관이 어우러져 있다는 의미다.
벚꽃이 만발하는 봄에 방문객이 가장 많고, 많은 눈이 내릴 때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지 않게 줄로 엮어두는 ‘유키츠리(雪吊り)’가 멋진 겨울철 풍광도 유명하지만 사시사철 관람객이 이어진다. 지난해 방문객이 340만명이었다고 한다.
겐로쿠엔에 들어서는 문은 7개가 있지만, 이 곳 관리사무소의 타나카 히로아키 차장은 “렌치몬으로 들어와 관람을 시작하는 코스가 가장 좋다”고 귀띔했다. 렌치몬에 들어서면 보이는 폭포 연못이 1774년 이 정원을 재건할 때 가장 먼저 만들어진 히사고 연못이다. 연못 왼쪽으로 난 길을 지나면 작은 분수가 나오는데, 1861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공원의 꼭대기에 있는 가스미가 연못과의 낙차를 이용해 분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겐로쿠엔의 하이라이트인 가스미가 연못에 이르면 거북이 모양의 깃코섬과 학 모양의 가라사키노마쓰 소나무, 가야금 모양을 한 고토지 석등 등이 한눈에 펼쳐진다. 과연 일본 3대 정원으로 꼽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나자와의 먹을거리들
겐로쿠엔이 있는 가나자와는 대다수 한국인에게는 아직 낯선 곳이지만, 일본 여행 마니아들 사이에서 그 매력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전국시대나 2차 세계대전에도 전쟁의 불길을 피해간 덕분에 수백년 전 옛 일본의 정갈한 풍광을 잘 간직하고 있어 작은 교토라고도 불린다. 도쿄와 오사카의 가운데 쯤에 있는데, 한국의 동해를 향해 뻗은 노도(能登)반도의 중심지다.
겐로쿠엔 일대는 가나자와 관광의 중심지다. 길 건너에 가나자와성이 있고, 그 옆에 21세기미술관이 있다. 21세기미술관은 UFO처럼 원형으로 만들어져 초현실적이 느낌을 준다. 건물 자체가 유명해 미술관을 보려고 가나자와를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역과 겐로쿠엔 가운데쯤 위치한 오미초(近江町)시장은 다양한 횟감을 밥에 얹어 먹는 카이센동이 유명하다. 시장 곳곳에 카이센동 식당이 있는데, 가격은 한 그릇에 2000엔(약 2만2000원)으로 엇비슷하다. 회나 초밥을 좋아하면 꼭 먹어야 한다. 이밖에 이 지역의 소고기와 감자로 만든 고로케빵, 일본 금박 시장의 90%를 차지한다는 가나자와 금박 기술을 혀로 만끽할 수 있는 황금 아이스크림도 시장에서 맛볼 수 있다.
가나자와의 또 다른 매력은 차와 커피다. 오미초시장 주변은 물론이고 도시 곳곳에서 짙은 커피향이 풍겨나는 카페를 만날 수 있다. 특히 교토의 기온처럼 100여년전의 옛 찻집과 요정이 지금도 영업중인 히가시차야가이(東茶屋街) 등 3대 옛 거리에서 차 향기를 즐긴 시간도 행복했다. 국가문화재로 등록된 찻집 ‘시마(志摩)’에 500엔의 입장료를 내고 들르면, 2층 건물 곳곳을 구경할 수 있다. 전통복장을 한 직원이 건네주는 말차와 다과도 맛볼 수 있다.
히가시차야의 옛집들은 1층이 기무스코(木蟲籠)라 불리는 격자로 장식돼 있다. 나무를 가늘고 길게 늘어세운 격자 사이로 가게 안쪽이 살짝 엿보인다. 가나자와 시내의 현대식 건물들도 기무스코 격자를 차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1일 버스승차권이나 30분씩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 대여소를 활용하면 더 알뜰하게 가나자와를 즐길 수 있다. 가나자와시 홈페이지에서 한국어로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3∼4일 일정으로는 노도반도를 따라 가며 온천을 즐기는 코스도 좋다. 나나오(七尾)의 와쿠라(和倉)온천의 료칸에서 해수탕에 두 번 들어갔다 나오니 피부에서 뽀드득 소리가 났다.
한국에서는 매주 6편의 직항편이 다닌다. 인천공항에서 고마쓰공항으로 일·수·금요일, 도야마공항으로 월·수·토요일에 비행기가 있다. 도야마로는 저가항공을 이용할 수 있다. 두 공항에서 가나자와까지는 버스로 40분 정도 걸린다. 도야마공항에서는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 한다. 도쿄나 오사카에서 신칸센을 타면 2시간30분만에 도착할 수 있다.
취재협조=일본정부관광국(J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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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글·사진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