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부음이 전해졌다. 지난 11일 83세에 급성 백혈병으로 타계한 느끼한 주걱턱의 사나이 로버트 본. 영화와 TV를 통틀어 수많은 역할을 연기했고, 이제는 새 세대의 새로운 나폴레옹 솔로도 등장했지만 언제나 영원한 나폴레옹 솔로로 기억될 그 배우다. 그는 훌륭한 배우이긴 하지만 대배우도 명우(名優)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의 별세가 큰 울림을 주는 것은 그가 나름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시대적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시대적 아이콘으로 만든 것은 물론 1964∼68년에 방영된 TV극 ‘엉클에서 온 사나이’의 타이틀 롤 0011 나폴레옹 솔로였다. 007 제임스 본드 열풍이 세계를 휩쓴 1960년대 본드의 아류로 탄생했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냉혹한 본드와 차별화되는 다정하고 유화적인(suave) 스파이상을 창조해냈다. 어쩌면 영화에 비해 폭력 등에서 훨씬 제약요소가 많은 TV극의 스파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이 만들어낸 거칠지 않으면서 어딘지 느끼한 이미지의 나폴레옹 솔로는 금발머리 찰랑대는 그의 파트너 일리야 쿠리야킨(데이비드 맥컬럼)의 쿨한 모습과 대조를 이루면서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했다.
물론 그 외에도 본이 출연한 기억할 만한 영화와 역할들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서부극의 걸작 ‘황야의 7인(1960)’. 그는 여기서 폐병에 걸린 겁쟁이 총잡이 역할을 멋지게 해냄으로써 공연한 제임스 코번, 찰스 브론슨 등과 함께 미래의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이후 그는 미끈하고 다소 뺀질거리는 듯한 외모와 잰 체하는 제스처로 ‘불리트(1968)’, ‘타워링(1973)’의 상원의원 같은 정치인과 부호 등 부정적 이미지의 사회 상류층 인사 역할을 많이 했다.
그는 영화와 함께 본령이라 할 다수의 TV극에 출연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으로 공부도 병행, 배우로는 드물게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남캘리포니아대학(USC) 신문학 박사.
본 박사님, 아니 나폴레옹 솔로 선생, 안녕히….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96> 안녕, 나폴레옹 솔로
입력 2016-11-15 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