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기적 <5>] 누더기 옷·맨발 소녀에 뭉클… “한 명씩만 품어주세요”

입력 2016-11-15 20:47
설동주(과천약수교회) 목사가 지난 9일 오후 말라위 쳇사 지역의 로잔야마 마을에서 후원을 결연한 모나카(오른쪽) 양의 어머니(왼쪽) 손을 꼭 잡아주며 격려하고 있다. 설 목사 왼쪽 뒤로 모나카 가족에게 선물한 염소가 보인다.
말라위 쳇사 지역 음게디 마을 주민이 지난 8일 한 오염된 우물에서 물을 퍼 담고 있다(위). 음가위 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붕 없는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가운데). 같은 학교 3학년생들이 땡볕 아래 벽돌이 없어 건축이 중단된 교실 건물에서 현지어인 치체와어를 배우고 있다(아래).
올해 열 살인 론니스 하드위키(여)는 책가방과 노트, 연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설동주(과천약수교회) 목사 앞에 수줍게 서 있는 그녀는 흙먼지로 뒤덮인 맨발에다 여기저기 구멍 뚫린 옷을 걸치고 있었다. 얼굴과 팔다리는 오랫동안 씻지 못한 것 같았다. 옷과 신발 대신 노트와 연필을 원하는 간절한 눈빛에 설 목사는 할 말을 잠시 잊은 듯 했다.

인구 45%가 당장 한 끼 먹을 양식 없어

지난 8일 오후 말라위 쳇사 지역의 음가위 초등학교 교정에 설 목사를 비롯한 월드비전 ‘밀알의 기적’ 답사팀이 도착했다. 바깥 기온은 35도 안팎인데, 땡볕을 피할 교실이 부족해 무너진 담장 옆에서 수업을 이어가고 있는 학생들을 지켜보던 설 목사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신발도 없이, 제대로 된 옷도 없이 저 땡볕아래서 공부한다고. 우리는 짚신이라도 신고 다녔었는데, 신발도 없이 참….”

공항 대기시간까지 합쳐 꼬박 25시간 동안 비행기와 차를 타고 달려온 설 목사는 눈앞에 펼쳐진 기막힌 현실 앞에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말라위 월드비전 보고에 따르면 국가 전역에 걸쳐 학교와 교사, 교육자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상당수 어린이들은 부모의 무관심으로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고, 여자 아이들은 조혼 풍습으로 10대 중반이면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다.

학교에서 발길을 돌려 닿은 곳은 음게디 마을의 한 우물가. 희멀건 가루약을 탄 듯한 우물에는 각종 이물질이 둥둥 떠다녔다. 말라위 월드비전 위생 담당 조셉 첼레와니씨는 “주민뿐만 아니라 개와 소, 돼지, 야생 동물들이 모두 사용하고 있다”면서 “각종 전염병을 유발할 수 있어 위험한데, 이 지역에서만 이런 우물이 60개가 넘는다”고 설 목사에게 설명했다. 그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중에 어린아이를 업은 아낙네 3∼4명이 들고 온 물통에 물을 담기 시작했지만 답사팀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후원결연 모나카와의 만남

이튿날 오후 쳇사 지역의 한 작은 마을. 설 목사와 아내 서은숙 사모의 마음은 설렘반 기대반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후원 결연 아동 모나카(여·7)를 만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등장하기도 전에 마주한 모나카의 흙집과 가족들. 설 목사 부부의 마음은 금세 무너져 내렸다.

30대 중반인 모나카의 엄마와 아빠는 멍하니 문지방 앞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들 옆에는 엄마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모나카의 한 살배기 남동생과 언어 장애를 지닌 열세 살 큰언니, 그리고 무심한 눈길로 방문객들을 바라보는 둘째 언니가 눈에 들어왔다.

깜깜한 흙집 안에는 가재도구나 옷가지, 집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흙바닥에서 먹고 잔다고 했다. 마당에는 모나카 아빠가 반쯤 만들다 만 깔판용 돗자리가 보였다. 유일한 수입원인데, 여섯 식구가 먹고 살기는 빠듯하다.

말라위 월드비전 홍보담당 자넷씨는 “말라위 인구 1700만 명 가운데 약 760만명(45%)이 당장 한 끼도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지난해 전국을 강타한 홍수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올 들어서는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식량·식수난이 심각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때 모나카가 나타났다. 분홍색 헤진 옷에 맨발이 눈에 들어왔다. 눈가엔 눈물이 글썽였다. 갑자기 나타난 이들을 낯설어 하는 모나카를 설 목사는 꼭 안아줬다. 이어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필기구와 노트, 스케치북, 과자까지 가득 담은 예쁜 가방을 모니카의 등에 직접 메어줬다. 가족에게는 암염소 한 마리와 50㎏들이 옥수수 자루를 건넸다. 그리고 설 목사는 이달부터 모나카의 정기후원자가 되기로 했다.

한 가정에 한 명씩 품을 때 마을 살아날 것

월드비전으로 전해지는 정기 후원금은 모나카 한 명만을 위한 게 아니다. 모나카의 삶의 터전인 쳇사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월드비전의 다양한 사업에 요긴하게 쓰인다.

예를 들어 지붕 없는 교실에서 공부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 시설을 개선하는 데 사용되거나 깨끗한 우물을 파는 데 쓰일 수 있다. 비가 새는 초가지붕 대신 양철지붕으로 교체하기도 하고, 병원 없는 마을에 보건소를 새로 지을 수 있다. 현대식 농업 기술을 보급할 수도 있고, 마을협동조합을 꾸리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십시일반으로 동참하는 마음이라고 설 목사는 강조했다.

“성경에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라는 말씀이 있어요.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어려운 이들을 돕는 건 곧 하나님을 위한 일입니다. 헐벗고 굶주린 저 어린 아이들을 위해 ‘한 가정에 한명씩’만 품어준다면 그들과 그들이 사는 마을 전체가 함께 살아납니다.”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말라위는 기독교 국가

최빈국 중 하나… 월드비전 지원 사업 활발


‘하나님이 말라위를 축복하신다.’

국가(國歌) 제목에서 엿보이는 것처럼 말라위는 기독교 국가다. 1700만 명에 달하는 인구의 82%가 기독교 신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혼의 양식’ 만큼이나 육신의 양식이 충분한 상황이 아니다.

유엔개발계획(UNDP) 인간개발보고서(2015)에 따르면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인구 비율이 전 국민의 88.4%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81달러로 한국(2만7000달러)의 70분의 1 수준이다. 평균 수명은 62.8세, 성인 문맹률은 38.7%에 달하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월드비전이 말라위 사역에 뛰어든 이유다. 현재 월드비전은 말라위에서 활동하는 수십여 NGO 가운데 가장 큰 조직인 동시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말라위 28개 행정구역 가운데 23개 지역에서 중·장기 사업이 진행 중이다.

설동주 목사와 월드비전 답사팀이 방문한 말라위 쳇사 지역은 수도 릴롱궤에서 남쪽으로 120㎞ 떨어져 있다. 인구는 3만 명으로 야오·체와·응고니 등 다양한 부족이 함께 거주하는 빈곤 지역이다. 말라위 월드비전은 쳇사 지역에 총 4000명의 결연 아동을 두고 있다. 2006년부터 교육과 보건·식수, 소득증대, 역량강화(주민자치 활성화) 사업 등을 펼치고 있는데, 총 15년 계획으로 2021년까지 이어진다.

말라위 월드비전 비트리스 음와기(여) 회장 직무대행은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기도와 관심에 깊이 감사드린다”면서 “물질적 필요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영성에도 관심을 갖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릴롱궤·쳇사(말라위)=글·사진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