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거취’ 유력 시나리오는… ‘즉각 퇴진→과도내각→조기 대선’ 수순 밟나
입력 2016-11-15 00:02
정치권이 ‘100만 촛불집회’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에 힘을 싣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14일 박 대통령 퇴진을 당론으로 정하면서 야3당의 대통령 퇴진 요구가 분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정치적 퇴진 선언과 과도중립내각을 통한 정국 운영, 내년 상반기 내 조기 대선 등을 주장해온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비주류를 중심으로 대통령의 완전한 2선 퇴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야3당, 즉각 퇴진 목소리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를 열고 박 대통령에게 ‘즉각 퇴진’을 요구하기로 당론을 정했다. 기존의 ‘대통령 2선 후퇴’ ‘단계적 퇴진론’에서 수위를 높였다. 이석현 의원은 의원총회 도중 기자들과 만나 “퇴진이라고 당론을 정했는데, 이는 곧 하야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당론 변경은 지난 12일 ‘100만 촛불민심’을 확인한 게 결정적 계기라는 분석이다. 당시 촛불집회에 나온 참가자 대다수가 박 대통령 퇴진과 하야를 외쳤다. 기존의 ‘대통령 2선 후퇴’라는 당론이 민심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힘을 얻게 됐다. 박 대통령이 뒤로 물러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촛불민심을 받아들여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퇴진을 요구하겠다는 의미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이 이미 대통령 퇴진과 ‘질서 있는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야3당이 사실상 하야 요구로 입장을 정리한 셈이다.
대통령의 전권이양 필요
박 대통령을 향한 압박 수위는 더 거세질 전망이다. 다만 대통령이 즉시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면 헌법상 60일 이내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정국 수습에는 부담이 크다. 대선을 치르기 전까지 각 당에서 준비해야 하는 후보 경선 등 선거 절차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실 선거’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야권은 일정한 단계를 밟아 대통령이 퇴진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야권의 대통령 퇴진 로드맵 중 첫 단계는 대통령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사과를 하고 즉각 퇴진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군 통수권을 포함한 전권을 넘기고 물러나라는 사실상의 하야 요구다. 대통령이 퇴진 의사를 밝히면 여야가 과도중립내각을 세워 총리를 내정할 수 있고, 새로 뽑힌 총리가 대통령의 퇴진 일정을 조율하게 된다. 급박한 조기 대선이 가져올 혼란에 비해 총리 주도 하에 정국을 수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후 대통령이 공식 퇴진하면 헌법에 따라 60일 뒤 조기 대선을 치르자는 게 야당의 생각이다. 정의당은 박 대통령의 민심수용 선언, 여야 4당의 합의 하에 총리 내정, 내년 4월 재보선일에 동시 대선 실시를 로드맵으로 제시했다. 야권은 대통령의 하야 수준의 공개 선언을 할 경우 과도중립내각 구성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누리당 비주류도 구체적 방안에서는 야당과 온도 차가 있지만 사실상의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비주류가 주도하는 ‘포용과 도전’ 모임이 국회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지금 시점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이라면 ‘질서 있는 하야’”라며 “새로 선출한 책임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 수행, 헌법 개정, 대통령 하야 등의 수순을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치권이 주장하는 퇴진론이 민심을 외면한 채 여야 간 시간벌기용으로 나온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수 한양대 교수는 “구체적 퇴진 절차가 명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질서 있는 퇴진은 국민 민심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며 “여당 내에서도 대안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질서 있는 퇴진이나 탄핵과 같은 제도적 절차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탄핵 카드도 만지작
야당은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할 경우의 대안으로 ‘탄핵’ 카드도 논의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다.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퇴진시키지 못할 경우 국회가 헌법상 절차를 거쳐 탄핵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당에서도 탄핵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박 대통령이 마지막 정치적 결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한다면 새누리당과 국회가 주도하는 탄핵을 통해 질서 있는 퇴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은 결과의 불확실성과 물리적인 시간이 고민거리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탄핵안을 상정했다가 부결돼버리면 끝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법상 대통령 탄핵안은 국회 재적인원(300명)의 3분의 2(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의결된다. 탄핵안을 발의했다가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될 경우 대통령에게 국정 주도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점, 향후 탄핵심판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탄핵안이 부결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탄핵안 상정과 의결, 헌재 결정까지 최대 8∼9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대통령 퇴진을 비롯해 정국을 조기 수습하려는 계획과도 맞지 않다.
글=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