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킹(PB) 센터에 전화가 빗발쳤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장중 코스피지수가 1940 아래로 추락하자 저점 매수를 해도 되느냐는 문의가 잇따랐다. 이 PB센터 관계자들은 “일단 기다려보는 게 좋다”고 답했다. 하지만 다음 날 주가는 수직상승했다. 이 PB센터의 센터장은 14일 “사실 트럼프가 당선될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다음 날 회의에서 직원들도 ‘깜깜하다’는 말을 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트럼프 충격’이 금융시장에 짙은 안개를 드리우고 있다. 이미 글로벌 주식시장은 한 차례 요동을 쳤다. 여기에다 보호무역주의 강화, 환율 제재, 미국 내 인프라 투자확대 등 공약에 따라 언제든지 금융시장이 출렁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시대’에 맞는 투자전략으로 크게 3가지 흐름을 제시했다.
국내 주식은 ‘방망이 짧게’
주요 증권사 PB센터장과 투자전략부 관계자 등은 보호무역주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어 국내 주식에 함부로 접근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NH투자증권 최호영 프리미어 블루 골드넛센터장은 “국내 수출기업에 대한 글로벌경쟁력 의심 기간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수출기업이 고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투자 전문가들은 국내 주식에 투자한다면 저평가 종목을 중심으로 하는 선별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미래에셋대우 갤러리아WM 서재연 상무는 “방망이를 짧게 잡아야 한다”며 “공격적 투자보다는 가격 매력이 있는 낙폭 과대 우량주를 분할 매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신증권 이영환 도곡역지점 PB팀장은 “시장에서 관심을 거둘 필요는 없다”며 “많이 빠진 종목에 중립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가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면 제약업종이,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면 소재·산업재 종목이 주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업체 수혜로 곧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국투자증권 이민홍 상품전략부 차장은 “업종이 유사하다는 것만으로 상승세가 이어질지 고민해볼 문제”라며 “실적 위주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 주식·펀드에 주목하라
적극적으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친다면 미국의 경기는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보다 나아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국 주식에 직접투자하거나 펀드를 통해 간접투자를 하는 게 대안으로 꼽힌다.
한국투자증권 이민홍 차장은 미국 내 소재·산업재 종목으로 구성된 ‘피델리티 미국 펀드’ 등을 추천했다. 헬스케어 종목 위주로 구성된 ‘글로벌 헬스케어 펀드’ 등도 유망 상품으로 제시했다. 이영환 PB팀장은 “트럼프가 기업가 출신이라 바이오 등 이른바 ‘될 산업’들은 더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다”며 “국가별로는 미국의 우방인 일본이 좋고, 중국은 견제, 유럽은 각자도생으로 버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 시대’ 종말 오나
그동안 저금리 기조 속에서 채권은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금리 하락기에는 이미 발행돼 있는 채권의 가치가 높아진다.
그러나 ‘채권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NH투자증권 최호영 센터장은 “단기적인 금리 인상을 트렌드로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채권 시대 종말이 오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고 했다. 삼성증권 김성봉 WM리서치팀장은 “채권은 일단 리스크 관리를 하고, 주식 비중을 늘려야 한다”며 “보유하려면 만기가 짧은 채권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금과 달러의 경우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10∼20% 비중으로 보유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시장 불안정성이 커질 때 위험 회피(헤지)용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다.
트럼프 당선 이후 원·달러 환율은 14일 1171.9원까지 상승했지만, 국제 금 선물가격은 하락세다. 중장기 전망은 엇갈린다. 이민홍 차장은 “트럼프의 기본 정책은 약한 달러”라며 “환율 방향성을 지금 얘기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영환 PB팀장은 “원·달러 환율은 1100∼1200원 사이에서 움직일 것이고, 더 오르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 최호영 센터장은 “약달러 정책을 펴도 위안화나 유로화에 대한 것”이라며 “아시아 신흥국은 달러 투자가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나성원 조효석 기자 naa@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기획] “국내 주식보다 美 주식·펀드 노려라”
입력 2016-11-15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