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 형국입니다. 국가적 리더십이 흔들리는 가운데 백가쟁명식 처방이 난무하고 이 길이 옳다, 저 길이 옳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또 수많은 국민들의 목소리까지 합하고 나니 정말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어지럽습니다. 우리의 갈 길을 제대로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사도는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크리스천의 인생길에서 가장 필요한 은사가 무엇이냐를 물을 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쓰였습니다. 본문의 일차적 의도는 교회 공동체의 평안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길이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우리가 사는 국가공동체와 사회공동체로 확대할 수는 없을까요.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이 위중한 국가적 문제 앞에서 내비게이션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잡히고, 불의한 재판을 받고,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그 상황에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흔히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공의’와 대치되는 개념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를 이루고, 공의는 또한 사랑을 완성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죄를 용납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러니 공의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누군가를 용서하고 용납하여 그 허물을 덮어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모든 행악을 그대로 용납하고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의 잘못은 바로 잡되, 그 역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징계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공동체는 물론 이 사회적 국가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바른 길은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분노와 울분으로 손수 원수를 갚겠다는 심사로 폭력을 부르고 행사하는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우리는 지금 ‘서로 사랑하라’는 내비게이션의 지시를 받으면서 선택해야 합니다. 내비게이션의 인도를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내 감정과 내 경험과 내 의지가 인도하는 방식대로 갈 길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어도 우리는 생명의 길을 가야 합니다.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주님만이 옳습니다. 내 방식대로 가겠노라 하면서 억지를 부림으로 주님의 인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변충진 목사 (인천 늘푸른교회)
약력=△총회신학연구원 졸업 △전 연수구기독교연합회 회장 △현 월드기독교부흥사회 대표회장,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부흥사회 상임회장
[오늘의 설교] 인생의 내비게이션
입력 2016-11-14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