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100만명이 몰린 서울 광화문과 청계천, 시청 일대는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광장은 사람으로 가득 찼고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오후 5시쯤 지하철 1호선 시청역 6번 출구는 시청광장 쪽으로 나오려는 사람들로 지하까지 가득 찼다. 거리 곳곳에서는 “진짜 100만명 되겠다” “가만히 서 있어도 (사람에게 떠밀려) 움직인다”는 얘기가 나왔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서 특정 단어를 편하게 검색하도록 사용하는 해시태크(#)를 통해 이날 집회 현장을 스케치했다.
#100만명
민중 총궐기는 오후 4시에 시작했지만 여러 시민단체의 사전 집회가 열려 오후 2시부터 사람들이 몰렸다. 오후 5시 기준 집회 참가 인원은 55만명(경찰 추산 14만명)이었다. 더 들어올 곳도 없어보였는데 참가자는 계속 불어났다. 오후 6시30분에는 주최 측 추산 85만명이 모였고, 1시간 뒤인 오후 7시30분 100만명을 돌파했다. 경찰 추산은 26만명이었다.
이렇게 모인 시민들은 오후 5시15분쯤 청와대를 향한 행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제자리걸음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광장이 사람으로 가득 차 더 이상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어려웠다. ‘열린 문화난장’ 행사를 진행하던 사회자는 “사람이 많아서 물리적으로 행진할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천천히 이동해주세요”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전국 상경
광장으로 가는 길은 명절 귀성길을 방불케 했다. 집회를 앞두고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버스가 동났고, 기차표가 매진된 곳도 있었다.
보육교사 황모(37·여)씨는 경남 진주에서 남편과 중학생 딸,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왔다. 딸의 손을 꼭 잡고 있던 황씨는 “슬픈 현실을 지금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에 참석했다. 집회 끝나고 서울에서 방을 잡고 하룻밤 자고 내려갈 예정”이라고 했다. 직장인 박모(27·여)씨도 KTX로 대전에서 왔다. 박씨는 “대통령이 그동안 이해할 수 없는 국정운영을 해온 게 최순실 때문이라는 게 밝혀지고 있는데도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국민들의 힘을 보여주러 서울까지 왔다”고 강조했다.
#이게 나라냐
집회에 나온 사람들 얘기는 “이게 나라냐”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시민들이 가장 많이 들고 있던 손팻말이다. 최순실씨에게 놀아난 박 대통령을 향한 분노와 실망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국정농단이 벌어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한 국가 시스템에 절망한 심정도 반영됐다.
어린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 단체 소속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시위할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하는데 대통령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놨는데 어떻게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종각역 근처에서는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애국가를 불렀다. 여중생은 “사랑하는 나라를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이 지키고 싶다”며 다 같이 애국가를 부르자고 제안했다.
#비폭력
시민 8000여명은 6시쯤부터 내자동로터리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은 청와대로 행진하겠다며 경찰을 향해 “비켜라” “우리가 주인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 차벽 앞에 선 경찰과 시민들의 몸싸움도 있었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일부 시민들이 몸으로 경찰을 밀며 몸싸움을 벌이려고 하면 다른 시민들이 “비폭력” 구호를 연신 외쳐 이들을 제지했다.
10시쯤 내자동로터리에서 한 중년 남성이 경찰 버스 위로 올라가 경찰을 미는 일이 벌어졌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버스 아래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은 “밀지 마” “비폭력” 구호를 반복했다. 결국 이 남성은 경찰에게 제지당했고 시민들의 야유를 받았다. 50대 여성은 의경들을 가리키며 “폭력경찰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다 우리 아들입니다”라고 몸싸움을 벌이는 남성들을 타이르기도 했다.
자정을 넘어 13일 오전 1시50분쯤에는 경찰 차벽 앞에서 춤판이 벌어졌다. 노동당 당원들이 선거유세용 트럭을 경찰 차벽 앞까지 몰고 가 노래를 틀었다. 시민들은 이 노래에 맞춰 다같이 춤을 췄다. 트럭이 다가오자 긴장했던 경찰들도 방패를 땅에 내려놓은 채 춤판을 바라봤다.
#하야
100만명의 목소리는 ‘대통령 하야’로 모아졌다. 내자동로터리에서 경찰 차벽에 막혀 더 이상 청와대 근처로 가지 못하자 함성을 질렀다. 대통령에게 국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겠다는 뜻이었다. 오후 6시30분쯤 300여명은 신고된 행진로를 벗어나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밀고 올라갔다. 청와대와 불과 200m 떨어진 곳이었다. 시민들은 “박근혜는 하야하라”라고 외쳤다. 청와대 집무실까지 전달되지 않을까 싶어 수차례 함성을 크게 보내기도 했다. 광화문에서 숭례문까지 2㎞에 이르는 대로에서는 시민들의 함성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김판 전수민 임주언기자 pan@kmib.co.kr
전세버스로 KTX로… “국민의 힘 보여주러 왔다”
입력 2016-11-13 18:04 수정 2016-11-13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