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1·12 촛불행진, 평화적 시위문화 典範이었다

입력 2016-11-13 19:31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절망적이어도 국민들은 이성적이었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광장과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는 한층 성숙된 시위문화의 전범을 보여줬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00만명, 경찰 추산 26만명이 모였다. 2008년 6월 10일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당시 70만명을 넘어선 최대 규모다. 그런데도 큰 충돌 없이 평화롭고 축제 분위기 속에 치러져 외신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주목되는 것은 이들이 민주노총이나 시민단체 등 외부 세력 개입 없이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점이다.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최순실씨 꼭두각시 노릇을 한 것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그런 대통령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결기가 100만명을 광장으로 불러모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아이 손을 잡고 나온 가족,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 가게 문을 닫고 지방에서 상경한 자영업자까지 다양했다. 진정한 참여민주주의의 모습이다.

이번 시위는 문화제 형식으로 평화롭게 치러져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한 과거의 폭력시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중간중간 노래를 함께 부르고 집회 참가자들이 자유발언 형태로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다. 1987년 6·10민주항쟁이나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백남기씨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가 최근 숨진 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집회 현장은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을 빼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시위에선 밤샘 대치 끝에 해산 명령을 거부한 남성 23명이 연행된 것을 제외하면 경미한 마찰이 있었을 뿐이다. 오히려 집회 도중 일부 시위대 간 몸싸움이 일 때면 헬멧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관과 의무경찰이 참여자들과 함께 ‘비폭력’을 외쳤다고 한다. 시위가 끝난 뒤 쓰레기봉투를 들고 대청소에 나선 10대들의 모습에서도 희망이 보인다.

이대생들이 보여준 느리지만 질서정연한 ‘달팽이 민주주의’에 이어 11·12 100만 촛불집회로 시위문화의 전기가 마련됐다고 본다. 집회는 극렬하지는 않았지만 시위 형태와 내용만으로 평범한 시민들의 분노와 허탈을 충분히 전달했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없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방식도 평화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