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원섭] 정령치 생태축 복원에 부쳐

입력 2016-11-13 17:59

백두대간 남쪽 끝자락인 지리산의 주요 고갯길 중 정령치(鄭嶺峙)란 곳이 있다. 옛날 마한의 왕이 정(鄭)씨 성을 가진 장군에게 이곳에 성을 쌓고 적들의 침입에 대비하라고 한 데서 독특한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이곳에 서면 고갯마루 동쪽으로는 노고단 천왕봉 등 지리산 주요 봉우리가, 남쪽으로는 성삼재와 왕시루봉, 서쪽으로는 남원시내가 보이며 주변의 억색 군락은 정령치의 운치를 더해준다.

전북 남원시 주천면 육모정에서 정령치로 이어지는 737번 지방도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꼽힐 정도로 풍경이 뛰어난데, 역설적으로 이 도로가 백두대간 마루금(능선)을 끊어왔다. 폭 67m, 길이 100m의 단절 구간이 생겨 물 흐르듯 이어지던 산줄기가 끊기게 된 것이다.

이 정령치 고개가 복원됐다. 1988년 도로가 생기면서 단절된 지 28년 만이다. 그동안 백두대간의 상징성 훼손, 경관 저해, 로드킬 발생 등이 지적되면서 복원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2014년부터 산림청이 40억의 예산을 들여 사업을 시행했다. 복원 취지를 살려 원지형과 식생을 최대한 구현하려 노력했다. 1918년 제작된 지형도를 토대로 원지형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하기 위해 폭 13m, 높이 10m, 길이 37m의 터널을 설치하고 그 위에 1.5∼4.5m 두께로 그 지역의 흙을 덮어 능선 형태로 지형을 복원했다. 거기에 인근 식생과 생태천이 과정 등을 고려해 억새, 산철쭉, 신갈나무 등 자생식물을 심은 것이다. 시공 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지만 복원의 목표 설정부터 과정마다 야생 동식물·산림관리 등의 전문가와 지역주민, 환경단체 등의 다양한 의견을 조정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백두대간 생태축 복원은 왜 필요한가?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성(connectivity) 회복이 아닐까 싶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1400㎞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로 끊어짐 없이 연결된 하나의 선(線)이다. 백두대간 산줄기는 설악산 오대산 등 우리나라 주요 산을 연결해 한반도 생태계를 이루는 일종의 연결고리다. 연결고리는 야생 동식물이 이동할 수 있게 만들고 때로는 생존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예컨대 특정 생물종이 환경악화 등으로 본래 서식지에서 살 수 없는 위험에 빠졌다고 하면 연결통로가 있는 경우 다른 곳으로 이동해 계속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증진할 수 있는 것이다. 부수적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백두대간 종주 등산로가 끊어짐 없이 연결돼 산을 찾는 즐거움이 커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백두대간에는 단절되거나 훼손된 곳이 많아 연결성을 회복하기 위해 갈 길이 멀다. 경제 개발을 거치면서 도로 개설, 채석, 각종 시설물 설치 등으로 마루금 능선이 단절된 곳이 63곳에 이른다. 백두대간의 기능과 상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난개발을 억제해 더 이상의 훼손을 막는 것과 이미 훼손된 곳을 복원하는 것이 핵심 과제인 셈이다.

정부는 2013년 ‘한반도 핵심 생태축 연결·복원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생태적으로 중요한 50곳의 단절지를 산림청 환경부 국토부가 복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산림청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2023년까지 15곳을 복원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훼손 유형에 따른 복원·관리 기술을 개발하고, 생태 복원이 장기 과업이란 점을 고려해 체계적인 전략을 마련하고 기획에서 모니터링 및 사후관리에 이르는 일괄 프로세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생태축 복원을 통해 백두대간을 치유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하다.

신원섭 산림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