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단풍으로 유명한 서울 중구 정동길을 찾는다면 정동제일교회(송기성 목사)를 방문해도 좋을 듯합니다. 1885년 헨리 아펜젤러가 설립한 이곳은 한국의 모교회로 통하는 유서 깊은 장소이자 한국교회의 수많은 유산을 간직한 교회입니다.
특히 이 교회 벧엘예배당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은 한민족이 걸어온 질곡의 근현대사를 품은 악기로 유명합니다. 예배당에 파이프오르간이 들어선 건 1918년. 파이프오르간은 당시 아시아에 3대밖에 없을 정도로 희귀한 악기였습니다. 우리나라에 파이프오르간이 들어온 것도 처음이었죠.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할 수 있었던 것은 독립운동가 김란사(1872∼1919) 여사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1916년 미국 감리회 총회에 우리나라의 평신도를 대표해 참석한 그는 미국 각지 교회를 돌며 재미동포들로부터 의연금(義捐金)을 걷어 파이프오르간을 마련했습니다. 고인의 남동생 손자인 김용택씨는 "할머니가 악기를 구입하기 위해 사비 100달러도 내놓았다"고 말했습니다.
인상적인 건 이 악기의 가격입니다. 악기 비용은 2500원 수준이었지만 운임과 설치비가 더해지니 5000원 넘는 돈이 들었다고 합니다. 정동제일교회가 1897년 벧엘예배당을 건축할 때 쓴 비용이 8000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악기 구입에 얼마나 큰 비용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르간 연주자이자 이 교회 음악위원회 위원장인 박은혜 권사는 “음악을 통해 전달되는 주님의 메시지는 강력한 힘을 갖는다”며 “신앙의 선배들 역시 이러한 점을 알았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파이프오르간의 ‘몸통’인 송풍실(Wind Box)은 각종 독립운동 문서를 등사(謄寫)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송풍실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문서가 3·1운동 독립선언서와 이후 발행된 지하 독립신문입니다. 정동제일교회 청년들은 콩나물을 담은 바구니 속에 독립신문을 넣어 비밀리에 배포하다 옥고를 치렀습니다.
현재 예배당에 있는 파이프오르간은 98년 전 설치된 그 악기가 아닙니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망가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정동제일교회는 2003년 파이프오르간을 복원했습니다. 고 이종덕 권사의 유족들이 내놓은 헌금으로 마련했다고 합니다.
매년 봄·가을 목요일과 금요일 정오 정동제일교회에서는 ‘기도와 오르간이 있는 정오연주회’가 열립니다. 정동길을 걷다가 오르간 소리가 들린다면 꼭 한 번 예배당에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톡톡! 우리교회-서울 정동제일교회 파이프오르간] 1918년 국내 최초 설치
입력 2016-11-13 20:50 수정 2016-11-14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