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정의 삶의 안단테] 우리 안의 그들

입력 2016-11-11 21:17

미래에 지구가 멸망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들을 보면 동의하지 않았다. 생명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 믿었다. 과학은 인간이 궁금해하던 모든 것을 규명할 것이고 질병을 없앨 것이라고, 생명의 아름다운 공존에 기여하며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데 현실적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종교도 성숙해 반목을 끝내고, 하나님이 내 마음 안에 전해주시는 사랑을 더 풍요롭게 인식하도록 이끌어 줄 것이라 믿었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경제인은 모든 사람에게 재화가 정직하고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가난한 이들에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역할을 할 것이라 믿었다. 정치인은 양심에 기반을 둔 거시적 안목을 갖추고 용기 있게 정책을 시행해나가는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라고 믿었다. 국민들은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기술의 힘으로 정치인들을 제대로 지켜보고 참여할 것이다.

모든 국민은 현대사회의 복잡함을 이해할 것이라고, 누군가 우리의 두려움을 이용해 작은 이익을 앞세워 선동하더라도 그 가식과 용렬함을 구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누군가 그럴 듯한 말을 하더라도 쉽게 부화뇌동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미래와 거리가 멀었다. 대통령은 우아하고 침착해 보였지만 주위엔 욕망의 엔진들을 장착한 비열하고 천박한 운전자들이 활개치고 있었다. 언론과 당은 섣불리 흥분하는 사람들의 성정과 화를 이용해 슬그머니 자신들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정국을 이끌어 버렸다. 큰 틀에서는 결코 정의일 수 없는 사실 한 가지를 정의라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심리학에 투사(projection)라는 개념이 있다.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이 곧 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 같은 현실의 주인공들 모습이 어쩌면 우리의 일부분일지 모른다. 우리 안에 무력한 대통령, 최순실, 검찰, 조종당하는 국민의 모습이 들어있을 수 있다.

어젯밤 무자비한 운전에 반사적일만큼 발 빠른 걸음으로 길을 비켜주던, 리어카를 몰던 노인의 가슴 시린 생존의 걸음을 보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세상은 정녕 이래야 하는가.

1만원을 벌기 위해 구부정한 허리로 굽실거리며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노인들과, 미래에 대한 기약 없이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대다수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미래를 위한 희망, 건강한 지성, 공익을 위한 용기와 배려는 공허하게 느껴지고 현실은 암울한 소식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문제풀기는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에 시작된다. 문제를 알게 해 준 주인공들과, 우리 안의 비열하고 천박한 그들에게 통렬하게 이별을 고할 때다. 그들 삶의 방식은 잔인한 배금주의로 가득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저급하고 미천한 것일 테니까 말이다.

우리가 대면해야 할 문제는, 정답을 골라낼 수 있는 사지선다형이 아니다. 새로운 차원의 영적·윤리적 사회를 구축하는 것은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대한민국만이 아닌 어쩌면 인류의 미래와 생존마저 염두에 두어야 할 완전히 새로운 작업일 것이다.

임미정<한세대 피아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