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의 고공행진이 심상치 않다. 오랜 암흑기를 끝내고 이번 시즌 단독 선두로 다시 도약했다. 경영에서는 많은 이윤을 남겼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다. 감독의 전략과 일부 스타플레이어의 기량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성공적 행보다. 그 중심에 미국인 사업가 존 헨리(67·사진)가 있다.
리버풀은 세계 최고의 선수 육성체계를 갖췄다. 6세부터 18세까지 세분화한 유소년 아카데미에선 선수들이 화수분처럼 샘솟는다. 2001년 발롱도르를 수상한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37·은퇴), 중원을 지휘하는 ‘야전사령관’ 스티브 제라드(36·LA 갤럭시)가 대표적이다. 모두 리버풀의 유소년 시스템이 배출한 슈퍼스타들이다.
리버풀은 스페인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네덜란드 아약스, 독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함께 유럽축구연맹(UEFA) 선정 5대 유소년 아카데미 운영 구단이다. 이런 선수 육성체계는 1892년 창단해 잉글랜드 풋볼리그1(1992년 여름까지 1부 리그)에서 18회,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에서 7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5회 우승한 명문 리버풀을 지탱한 힘이다. 하지만 이미 키워진 선수를 영입하거나 부진한 선수를 제때 방출하는 안목은 없었다. 정작 중요한 프리미어리그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리버풀의 실속 없는 명성은 그동안 이적시장에 뿌린 헛돈과 무관하지 않았다. 거액으로 사들여 반값도 안 되는 헐값에 매각한 선수들이 많았다.
영입과 방출의 실패로 쌓인 손실은 갈수록 막대한 자본을 끌어들여 몸집을 불리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을 저해한 요소다. 프리미어리그는 1992년 8월 출범해 25번째 시즌으로 돌입했지만 리버풀은 여전히 무관(無冠)이다.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정상의 문턱에서 번번이 미끄러졌다. 2000년대 프리미어리그를 호령했던 ‘빅4(리버풀·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아스날·첼시)’ 중에서 우승하지 못한 구단은 리버풀뿐이다.
전력보강 실패는 성적하락으로 이어진다. 성적하락은 후원감소로 인한 재정악화를 초래한다. 재정악화는 다시 전력보강 실패로 연결된다. 리버풀은 이런 악순환을 오랫동안 반복했다. 경영실패가 부른 악순환이었다. 리버풀은 살길을 찾아 시장으로 나갔다. 미국 중국 러시아 중동 동남아 등 해외자본이 프리미어리그로 썰물처럼 밀려온 2010년이었다. 헨리는 그때 등장했다.
헨리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와 국제자동차대회 나스카 레이싱을 소유한 펀웨이스포츠그룹 회장이다. 이미 스포츠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스포츠시장에 투자하는 목적은 기업홍보나 자본축적을 위해 구단을 활용하는 보통의 사업가들과 조금 다르다. 평소 생각했던 구단의 운영철학을 경영으로 실현한다. 메이저리그와 프리미어리그에서 명문구단을 하나씩 소유한 스포츠시장의 큰손이지만 사실은 구단주보다 단장에 가깝다.
헨리는 보스턴 구단주로서 경영능력을 입증했다. 2002년 7월 보스턴을 인수해 선수단을 재편했다. 당시 29세였던 테오 앱스타인(43·시카고 컵스)을 단장으로, 테리 프랑코나(57·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감독으로 각각 선임해 보스턴의 부활을 일궜다. 보스턴은 헨리를 구단주로 선임하고 2년 지난 2004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86년 동안 시달렸던 ‘밤비노의 저주’에서 그렇게 벗어났다.
헨리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한 리버풀을 인수한 원인을 단순한 돈벌이로만 볼 수 없는 이유 역시 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헨리에게 리버풀은 보스턴과 마찬가지로 도전이다. 도전의 결실은 나타나기 시작했다. 페르난도 토레스(32·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루이스 수아레스(29·바르셀로나) 등 슈퍼스타들의 이적료로 2010년부터 3억8400만 파운드(5500억원)의 이윤을 남겼다. 최근 6년간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긴 구단이다.
헨리는 이렇게 수확한 자본을 선수단에 재투자했다. 위르겐 클롭(49)과 같은 명장이나 가능성 있는 선수를 영입해 리버풀을 여러 차례 재편했다. 그렇게 리버풀을 이번 시즌 상승세로 돌려 세웠다.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까지 8승2무1패(승점 26)로 단독 선두다. 헨리의 경영 능력과 운영철학으로 일군 결실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ML 저주 해결사, EPL 저주도 푸나
입력 2016-11-12 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