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극계 최고 화제작은 고선웅이 연출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다. 배우 하성광(46)은 극중에서 자신의 자식까지 죽여가며 주군의 피붙이를 보호하고 키운 정영 역을 맡아 큰 주목을 끌었다. 복수의 헛헛함을 가슴 저리게 표현한 그에게 연극계 최고 권위를 지닌 대한민국연극대상과 동아연극상 연기상이 돌아갔다. 1995년 데뷔한지 20년 만의 일이었다.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배우인 그는 올들어 주요 극장의 러브콜을 받는 위치에 올라섰다. 예술의전당도 올해 제작하는 2인극 ‘고모를 찾습니다’(22일∼12월 11일 자유소극장)에 일찌감치 그를 염두에 뒀다. 캐나다 국민작가 모리스 패니치의 대표작인 ‘고모를 찾습니다’는 인생 낙오자인 켐프가 유일한 친척인 고모 그레이스로부터 “죽어간다”는 편지를 받고 간호하러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고모를 찾습니다’는 두 외로움덩어리의 만남을 그린 독특한 2인극으로 반전이 매우 인상적”이라며 “두 캐릭터 사이의 긴밀한 호흡이 중요한 2인극의 매력을 이번에 제대로 느끼고 있다. 함께 출연하는 정영숙 선생님과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밌다”고 밝혔다.
전남 진도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 처음 연극을 본 그가 몇 년 뒤 배우의 길을 선택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는 “군대를 다녀온 뒤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 대학로로 갔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평범한 회사원 대신 재밌는 삶을 살고 싶었다”면서 “대학로에서 남들처럼 처음에는 포스터 붙이면서 연기를 배웠다. 그리고 좋은 연출가와 작품을 따라 다녔다. 연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학교도 뒤늦게 다녔다”고 회고했다.
그는 초반엔 연출가 박근형이 이끄는 극단 골목길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이후 다양한 연출가와 작업했다. 처음부터 두드러지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시간은 그의 연기에 깊이와 무게감을 얹어줬다. 그는 “그동안 나를 불러주는 곳이라면 거의 거절하지 않았다. 물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배우 생활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었다”면서 “데뷔하고 10년쯤 지나 정말 힘들었을 때 2006년 극단 76의 ‘리어왕’으로 신인상을 받았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앞으로 나갈 힘을 얻게 됐다. 그리고 지난해 ‘조씨고아’로 많은 상을 받으면서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다시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그는 한·중·일 3개국 무대에 모두 서는 진귀한 기록을 세우게 됐다. 지난 3월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에서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의 ‘야끼니꾸 드래곤’ 주역으로 출연한데 이어 10월엔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중국 베이징 국가화극원 무대에 섰다. 두 무대 모두 현지에서 기립박수를 받을 만큼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2차례 공연되며 수작이라고 소문났던 ‘야끼니꾸 드래곤’에 출연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중국 고전인 ‘조씨고아’를 우리나라에서 만든 버전으로 선보이는 것에 대해 다들 긴장했는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내년 1월에는 국립극단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다시 관객과 만난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데뷔 21년차 배우 하성광 “지난해 賞福… 내 길 옳다는 확신 얻었죠”
입력 2016-11-14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