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조선의 美… 좌절의 시대를 위로하다

입력 2016-11-14 04:00
DDP에서 선보이는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전 전시 장면. 백남준의 설치작품 '비디오 샹들리에 1번'이 장승업의 '기명절지화' 병풍 이미지를 배경으로 손님을 맞듯이 입구에 걸려 있다. 샹들리에는 서양에서 부의 상징이며, 기명절지화는 조선 후기에 유행한, 행복에 대한 소망이 담긴 서화 양식이다.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가나아트센터 '혜곡 최순우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는 화각, 칠기, 소반 등 500여점이 나와 조선시대 공예의 조형미를 보여준다. 사진은 각각 종이로 만든 아자문(亞字紋)제등(위)과 곱돌약주전자. 가나아트센터 제공
전통미술은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새 빛깔을 얻는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인과 관계 속에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서화와 옛 공예품을 다시 들여다보며 애정과 긍지를 갖게 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두 전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열리고 있다.

간송문화재단과 백남준아트센터가 협업해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하고 있는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문화로 세상을 바꾸다’를 먼저 보자.

간송문화재단이 보유한 간송 전형필(1906∼1962) 컬렉션 중 ‘취옹(醉翁)’으로 불렸던 연담 김명국, 남종화의 대가 현재 심사정, ‘조선의 고흐’ 호생관 최북, 구한말 스타 화가 오원 장승업 등 조선시대 중후반기 활동했던 화가 4명의 작품 50여점이 나왔다.

수백 년 전 대가들과 20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세계를 묶는 이번 전시는 대비를 통해 놀라운 시적인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이를테면 소형TV 모니터를 샹들리에처럼 늘어뜨린 백남준의 설치작품 ‘비디오 샹들리에 1번’과 장승업의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를 함께 배치하는 식이다. 샹들리에는 서양에서 부의 상징이다. 마찬가지로 기명절지화는 연꽃(군자), 밤(자손번창), 감(성공), 괴석(장수) 등의 기물을 그려넣은 것으로, 보통 사람의 ‘행복 소망’이 담겼다.

심사정의 만년 득의작인 ‘촉잔도권’은 하늘을 오르기보다 더 힘들다는 중국 촉 지역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그린 대형 두루마리 그림이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평화로운 강 하구에서 돛단배들이 유유히 흘러가는 장면이 있다. ‘고진감래’의 낙관성을 풍긴다. 이 그림은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와 대구를 이루듯 보여준다. 과거의 통신 수단인 코끼리가 현재의 통신수단인 TV를 실은 수레를 끌고 가는 것으로, 정보통신의 진화에 대한 작가의 낙관이 깔려 있다.

장수에 대한 소망을 담은 김명국의 ‘수로예구’(수노인이 거북을 끌다), 유불선의 통합을 상징하는 최북의 ‘호계삼소’(호계의 세 사람 웃음소리), 유유자적한 삶을 형상화한 심사정의 ‘주유관폭’(배타고 폭포구경하다) 등 경쟁과 갈등의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를 보여주는 옛 화가들의 그림들이 엄선됐다. 이런 작품들이 수백 년 시공을 뛰어넘어 후배 작가인 백남준의 다양한 작품들과 대구를 이루듯 전시돼 해학과 재치, 위트와 유머를 만들어낸다.

간송문화재단 전성우 이사장은 “낙천주의야 말로 우리 문화가 기저에 갖고 있는 핵심”이라면서 “정치적 혼돈과 개인적 좌절이 아무리 깊더라도 옛 사람들은 낙천적 기질을 잃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순실 게이트로 혼돈과 좌절에 빠진 요즘 위안과 힘을 얻을 수 있는 전시다. 내년 2월 5일까지.

내달 중순부터는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가나아트센터에서 ‘혜곡 최순우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 조선시대 공예의 아름다움’이 열린다. 탁월한 안목과 함께 수려한 글 솜씨로 ‘한국의 미’를 설파했던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 선생은 국립중앙박물관장 시절인 1975년 ‘한국민예미술대전’을 열어 히트를 쳤다. 화각, 나전칠기, 함, 소반, 떡살 등 생활 속 공예품의 멋을 재발견하고 확인시킨 전시였다.

이번 기념전은 박영규 용인대 명예교수(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장)가 총괄 기획을 맡아 최순우가 재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했던 전통 공예품의 미와 멋을 다시 환기하자며 기획됐다. 연적, 함, 필통, 소반 등 500여점이 나와 18∼20세기 초 조형미술이 뛰어난 공예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여준다.

박 교수는 “연적만 해도 장독 만드는 오지로 제작한 오지 연적과 놋쇠 연적 등 서민이 쓰던 것부터 은상감한 금속 연적, 천도복숭아형 백자 연적 등 상류층을 위한 고급제품까지 걸쳐 있다”면서 “소재와 기법도 다양해 일반 관람객뿐 아니라 인간문화재는 자극을 얻고, 현대 디자이너는 영감을 얻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15일부터 내년 2월 5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