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를 도운 세력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부터 비욘세 등 팝스타까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이너서클’은 가족 위주이고 나머지 인사도 대단한 명사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과감하게 트럼프에게 ‘베팅’한, 몇 안 되는 이들은 트럼프의 당선으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고위험·고수익의 투자였던 셈이다.
9·11 영웅, IT업계 이단아 ‘대박’
CNN방송은 9일(현지시간) 루돌프 줄리아니(72) 전 뉴욕시장이 차기 백악관 비서실장이나 법무장관, 국토안보부 장관, 국가정보국(DNI) 국장, 중앙정보국(CIA) 국장 후보로 물망에 오른다고 전했다. 2001년 9·11테러 당시 뉴욕시장으로 국민적 영웅이 됐던 줄리아니의 화려한 귀환이다. 그는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중도 하차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트럼프의 ‘킹 메이커’ 역할을 맡아 임무를 완수했다. 그는 오랜 친구이자 정치 멘토로서 트럼프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적극 감싸고 변호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맡은 크리스 크리스티(54) 뉴저지 주지사도 백악관 비서실장이나 법무장관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된다. 그는 공화당 경선 초기인 지난 2월부터 트럼프를 지지했다. 트럼프에 충성을 다한 극소수의 기성 정치인 중 하나다.
신경외과 의사 출신 흑인 정치인 벤 카슨(65)은 교육부 장관이나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다. 카슨은 이번 공화당 경선에 뛰어들어 한때 지지율 1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지난 3월 중도 하차하고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지난 9월 트럼프는 “내가 집권하면 백악관에 카슨을 위한 훌륭한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의 유명 투자자인 칼 아이칸(80) 아이칸엔터프라이즈 회장과 스티븐 너친(54) 듄캐피털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는 재무장관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기업사냥꾼’ 아이칸은 트럼프의 경제정책 비전을 열렬히 지지해왔다. 그는 2006년 KT&G 경영권을 공격한 사건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골드만삭스에서 17년간 일하다 투자회사를 차린 너친은 지난 5월부터 트럼프 캠프의 재무책임자를 맡았다.
온라인 결제서비스 업체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49)도 베팅에 성공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선 거의 유일하게 트럼프를 위해 지갑을 열어 125만 달러(약 15억원)의 후원금을 냈다. 그가 스탠퍼드대 로스쿨 출신이어서 연방대법관 후보가 될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 연방수사국(FBI) 제임스 코미(56) 국장과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45)는 공개적인 트럼프 지지자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트럼프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코미 국장은 선거 막판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 결정으로 판세를 뒤엎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어산지는 클린턴 측 사람들의 해킹 이메일을 줄기차게 공개하며 클린턴을 괴롭혔다. 그의 폭로는 클린턴 이너서클의 적나라한 맨얼굴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기득권층에 대한 혐오감을 가중시켰다. 위키리크스는 대선 직후에도 “민주당이 가장 경쟁력 없는 인물을 후보로 내세웠다”며 클린턴을 끝까지 조롱했다.
차기 노렸던 라이언 의장 위기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웠던 폴 라이언(46) 하원의장과 밋 롬니(69)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비롯한 공화당 일부 인사는 난처해졌다. 특히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던 라이언 의장의 입지가 매우 불안해졌다. 그는 지난달 트럼프의 음담패설 동영상이 공개됐을 때 “역겹다. 더 이상 트럼프 지원 유세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롬니는 당내 가장 강경한 반(反)트럼프 인사였다.
그러나 롬니와 라이언 등 트럼프에 등을 돌렸던 공화당 중진들은 일제히 트럼프의 승리를 축하하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트럼프 성추문이 불거졌을 때 지지를 철회했던 존 매케인(80) 상원의원도 “전력을 다해 새로운 대통령에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9일자 사설에서 “트럼프가 권력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것을 가르쳐 줄 똑똑한 사람들로 주변을 채울지, 아니면 지금처럼 자기 본능만 믿고 극소수 보좌진에 의지할지는 알 수 없다”면서 “그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우군으로, 의회와의 관계 개선에 나선다면 일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美 트럼프 시대] 트럼프에 베팅 ‘대박’… 대립각 세워 ‘씁쓸’
입력 2016-11-11 0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