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트럼프 시대] 최영진 前 주미대사 “美 고립주의 실행 땐 국제질서 주도권 中이 쥘 것”

입력 2016-11-11 00:01
최영진 전 주미 대사는 10일 국민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대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 우리의 입장과 전략을 우선 정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윤성호 기자

최영진 전 주미 한국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고립주의를 실행하면 국제질서의 미국 주도권이 자연스럽게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은 트럼프 당선인 측에 무조건적인 ‘줄대기’에 앞서 주한미군 주둔비용 증대와 전시작전권 조기 이양 등 그가 제기할 주요 의제에 대해 입장과 전략을 먼저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후보의 승리를 또 하나의 ‘블랙스완’(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트럼프 승리의 원인이 뭔가.

“미 국민들은 변화와 안정 중에서 변화를 선택했다. 왜 이처럼 변화 욕구가 컸느냐. 거기엔 중산층의 분노가 깔려 있다. 2008∼2009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지표상 성장률은 회복했지만 빈부격차는 한층 심해졌다. 저소득층이 된 중산층이 크게 늘었다. 앵그리 화이트는 이러한 몰락한 중산층의 한 상징이다. 빈부격차를 해결하지 못하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엄청났다. 여기에 트럼프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가세했다. 중산층의 분노를 이용했다. 당신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은 중국 등 신흥국에서 들어오는 값싼 상품과 이민자들 때문이라는 트럼프의 말이 먹혀들었다.”

-인종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게 아닌가.

“그건 아니다. 히스패닉, 아시아계 등 소수인종의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이 예상보다 높았다. 빈부격차 확대와 중산층의 붕괴가 최대 원인이다. 금융위기 수습 과정에서 위기의 주범인 대형 금융기관을 천문학적 규모의 세금을 투입해 살려준 행태 등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지 않았다. 클린턴 후보가 부도덕하다고 지탄의 대상이 된 월가와 가까운 게 더 감점 요인이 됐을 것이다.”

-그럼 앞으로 트럼프는 중산층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나.

“그게 문제다. 트럼프의 대책은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전통 제조업 중심지인 러스트 벨트의 재건과 일자리를 공약하면서 트럼프는 한국·중국의 무역흑자를 줄여 해결하겠다고 했다. 이런다고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살아나지 않는다. 미국 취업자 중 8%만이 제조업에 종사한다. 78%가 서비스업이다. 보호무역주의는 더 큰 역풍만 부를 수 있다. 선거에 이기는 데 포퓰리즘을 잘 써먹었지만 향후 원만한 국정 수행을 위해서는 이를 바꿔야 하는 딜레마, 이런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정책은 대폭 수정이 불가피한가. 동북아 정세는 어떻게 되나.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대외 개입을 줄이는 고립주의가 두 기둥이다. 트럼프가 선거기간 밝힌 대로 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공약을 100% 실행하지는 않더라도 해외에 나가 있는 미군을 감축하고 국제 현안에 대한 관여를 줄이고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비관세 장벽 등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의 미래는 아시아에 있다. 트럼프가 공약대로 미·일동맹을 약화시키고 아시아에서 물러나는 정책을 선택한다면 결과는 명확하다. 국제질서 주도권의 중국으로의 이양 속도가 가속화될 것이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손을 떼려 하면 가장 곤경에 처하는 것이 일본이다. 일본은 재무장으로 나아가겠지만 이것이 얼마나 힘든 길인지는 아베 신조 총리가 잘 알고 있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는 중국이 싸워 얻은 것이 아니고 미국 자체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아시아로부터 후퇴를 선택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의 쇠퇴를 상징하는 사건이 될 것이다.”

-한·미동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는 무역 적자를 내는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한국이 다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고 한국은 핵무장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과거처럼 미국의 요청을 기다리지 말고 우리 입장을 가져야 한다. 기본 입장은 동맹이란 상호 이익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주한미군 비용 전액 부담을 요구하면 이는 주한미군을 용병을 만들겠다는 것이니 동맹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거절할 각오를 해야 한다. 트럼프는 해외에 미군이 너무 많이 나가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전시작전권도 조기에 이양할 수 있다고 보고 전략을 결정해야 한다. 우리 입장도 없이 인맥을 찾아 하소연하겠다는 식이면 우리가 당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북한 문제는 중국을 통해서 해결하겠다는데.

“중국을 이용해서는 북핵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의 외교 전략은 시간을 끌면서 해결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을 붕괴로 이끌 양보를 할 턱도 없다. 무엇보다 우리의 철학과 전략이 중요하다. 북한은 우리가 바란다고 소멸되지 않는다. 압력과 대화를 병행하는 게 외교안보 전략의 기본이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라인에 누가 있나.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을 주목해야 한다. 공화당 인사인 그는 트럼프 캠프의 외교안보자문을 해왔다고 한다. 트럼프가 가장 중요시하는 외교 책사는 하스 회장이 될 것이다.”

약력
△서울(68) △파리1대학 국제정치학 석·박사 △외무고시 6회 △유엔 DPKO(평화유지활동국) 사무차장보 △외교안보연구원장 △외교통상부 차관 △주유엔 대사 △코트디부아르담당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 △주미 대사 △현 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배병우 편집부국장 bwbae@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