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트럼프 시대] “기업에 새로운 기회될수도” 경제팀의 근거없는 낙관론

입력 2016-11-10 18:23 수정 2016-11-10 21:32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오른쪽)이 10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청사에서 경제현안점검회의를 열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운데)와 경제부총리에 지명된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발언을 듣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미국 대선 승리가 “(한국 경제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정부가 강조하고 나섰다.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을 진정시키기 위한 취지로 해석되지만 이 같은 발언이 위기 상황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현안점검회의를 주재하며 “트럼프 당선인의 인프라 투자 확대, 제조업 부흥 등 정책 방향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며 “더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교역 및 투자 확대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경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외건전성과 재정여력을 갖추고 있으며, 1997년 및 2008년의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경험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상목 기재부 제1차관도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트럼프의 당선으로 위험요인도 있지만 기회요인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 차관은 “현재 각 나라 중에서 미국이 가장 성장·투자 여력이 있다”며 “인프라 투자나 산업 흐름을 더 적극적으로 끌고나가겠다는 의지가 강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우리 기업이나 정부에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루 전 경제팀의 인식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기류가 강해졌다. 유 부총리는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시된 전날 오후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대외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의 국내 상황과 (트럼프 당선이) 결합될 경우 우리 금융시장은 물론 경제전반에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이 진정세를 보이자 태도가 바뀌었다.

시장에서는 이미 국내 경제의 주요 지표에 비상등이 켜진 시점에 트럼프 당선에 따른 불확실성 상승까지 더해지면 우리 경제의 위기가 심화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지난 9월 생산·소비·투자 등은 전월 대비 일제히 감소세를 기록했다. 특히 가뜩이나 부진한 수출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전반적으로 우리 정부는 트럼프 승리에 대비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는 분위기다. 경제팀도 마찬가지여서 유 부총리는 “여론조사나 시장 예상과 달리 트럼프가 당선됐다”고 해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하지 못했음을 시사했다.

이날 경제현안점검회의에는 차기 경제부총리로 지명된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참석했다. 유 부총리는 “경제부총리가 컨트롤타워가 돼 외환보유액, 민간부문의 외화유동성 및 외채 상황 등을 원점에서 재점검하고, 가계부채, 구조조정 등 대내 리스크요인도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발언했고, 임 위원장은 경청했다. 부총리가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지적과 현·미래 경제수장이 동거하는 구조가 위기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유 부총리가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유성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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