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change)’.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외치는 ‘트럼프노믹스’가 글로벌 통상 환경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10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철 통상정책본부장은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됨으로써 글로벌 통상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변화’”라고 정의했다. 미국의 통상정책이 최근 실용적인 방향으로 바뀐 데다 트럼프의 성향까지 덧입혀져 ‘비즈니스 차원의 양자 간 딜(협상) 형태’로 전환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TPP 폐기되나
트럼프가 보호무역에 관해 발표한 공약은 7가지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 미국 노동자를 위해 싸울 무역 협상가 임명, 미 상무부의 무역협정 위반 감시 지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및 불가능시 탈퇴, 중국 불공정 행위시 법원 및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중국 불법행위 지속시 세이프가드·무역보복·수입규제 실시 등이다.
무역전쟁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부터 공약이 100% 실현되기는 어렵다는 전망까지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한국무역협회 제현정 통상연구실 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으로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우선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밀고 있는 TPP의 운명은 트럼프 정부가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이 장악한 미 상원이 TPP 비준안을 남은 ‘레임덕 회기’에 처리하지 않고 내년 초 출범하는 ‘트럼프 정부’로 넘기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물론 무역과 통상이 다자 또는 양자 간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도 상대국과의 이해관계를 따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 본부장은 “TPP 폐기 등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예상과 다른 후폭풍이 올 수 있다”면서 “무역제재 등을 활용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불공정행위에 대한 WTO 제소나 세이프가드·무역보복 등이 이에 해당한다.
환율의 ‘슈퍼 301조’로 불리는 베넷-해치-카퍼(BHC)법 활용 가능성도 높다. 중국, 일본, 독일, 대만, 한국 등 대미 무역 흑자국을 상대로 환율보고서를 내놓고 있는 미 재무부는 BHC법에 따라 환율 심층분석국 지목을 고민 중이다. 올 초 미국은 중국, 일본, 독일, 대만, 한국 등을 환율감시국으로 정했다.
RCEP 앞세운 中, 중심 될까
미국이 주도하던 TPP가 트럼프의 당선으로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주목받는 것은 중국 중심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다. TPP가 폐지되지 않더라도 발효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사실상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RCEP는 한국, 중국, 일본과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 등 16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 참여국 총 GDP 규모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나 된다. 참여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연내 타결이 어려웠지만 트럼프 당선으로 분위기는 달라졌다. 중국에 높은 수준의 시장개방을 압박하며 협상 지연을 이끌어 오던 일본의 입장 변화 가능성도 있다. TPP 발효가 연장된 만큼 TPP 참가국이기도 한 일본으로선 RCEP 쪽으로 방향을 전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TPP 원체결국에서 빠지면서 RCEP를 대안으로 삼았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만약 미국이 TPP 재검토를 시사한다면 중국 중심의 RCEP가 탄력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통상환경 변화 오나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중국 제재에 나설 경우 유탄을 맞을 수 있다. 중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내놓는 정책은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은 중국산 철강에 반덤핑 관세를 물리는 등 수입규제 강도를 높이면서 지난 8월 한국산 철강에도 관세 폭탄을 내린 바 있다.
내년 1월 트럼프의 취임까지 골든타임을 활용해야 한다는 요구의 목소리도 나왔다. 정 본부장은 “선제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소통 채널을 미리 만들고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주형환 장관도 이날 전경련-美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제28차 한·미 재계회의 연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지속적인 발전과 상호투자를 통한 양국 간 교역 확대 등을 담은 ‘한국의 통상정책 방향과 새로운 한·미 경제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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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1-1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