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 설상가상… 한화도 울상
입력 2016-11-10 18:17
‘최순실 사태’와 ‘트럼프 당선’ 등 잇따르는 국내외 악재에 기업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문제로 검찰 조사까지 받게 된 처지에 대미 수출전선에도 잔뜩 먹구름이 끼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건 보호무역 기치는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국내 대기업들에 엄청난 장벽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내 1, 2위 기업인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부터 이 장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삼성전자는 대부분의 완제품을 미국 밖에서 생산한다. 주력 제품인 스마트폰은 베트남 공장에 집중돼 있고, 가전제품은 멕시코 등 남미 지역에서 생산하고 있다. 트럼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나프타(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 반감을 드러낸 만큼 삼성전자 제품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기아차그룹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미국 현지 공장이 있지만 미국 판매량의 55%가량을 차지할 뿐이다. 나머지 45%는 울산공장에서 생산된 물량인데 한·미 FTA 덕분에 따로 붙는 관세는 없다. 트럼프가 한·미 FTA 재협상을 주장할 경우 현대기아차가 현재 미국 시장에서 누리는 관세 혜택이 사라질 수 있다. 북미 지역을 염두에 둔 멕시코 공장도 나프타의 향방에 따라 전략적 거점 기능이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갤럭시 노트7 발화 사태와 대규모 리콜·배상 건으로 미국 언론과 소비자들에게 혼쭐나며 보호무역주의 ‘예고편’을 경험한 두 업체는 고민이 깊다. 현대차 관계자는 10일 “트럼프가 극단적인 공약들을 그대로 실행에 옮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주요 기업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LG전자는 삼성전자처럼 TV·냉장고 등 주요 가전제품 생산 기지를 멕시코에 두고 있다. LG전자의 글로벌 매출 중 30%가량(지난해 기준 약 16조원)을 북미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트럼프가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사기’라고 표현했던 만큼 태양광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한화에도 미국 대선 결과는 악재다. 이를 방증하듯 태양광 패널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한화케미칼은 지난 3분기 2047억원의 영업이익(전년 동기 대비 53.55% 증가)을 내고도 대선 결과가 나오자 주가가 10% 넘게 빠졌다.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일찌감치 관세장벽 강화를 예상했던 철강업계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가격이 올라도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프리미엄 제품군을 강화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과 롯데케미칼 등 유가에 민감한 석유화학 업체들은 향후 유가 변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만 트럼프 당선을 호재로 보는 기업들도 있다. 트럼프의 공약대로 미국 보건정책이 확대된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한 바이오·제약 업체들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이 해당국에 주둔 미군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 한화 등 방산업체들에는 새 수출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
정현수 허경구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