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야권에서 거인(巨人)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자고나면 새 조건을 내걸던 야권이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의 총리 추천 제안을 거부한 채 장외 투쟁을 준비 중이다. 핑퐁 게임 도중 탁구 라켓을 던져버린 형국이다. 상대 선수의 퇴장까지 요구하고 있다. 라켓 대신 촛불을 들겠다고 한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10일 거리로 나가 대통령 퇴진 유인물까지 나눠줬다. 식물 대통령에 이어 식물 국회 우려마저 나오는 이유다.
야권은 최순실 게이트를 최대한 길게 끌고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선 정국까지 정국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속내라 할 수 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어떻게 하면 사태를 더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쓰레기 속에 꽃마차를 탈까 하는 부류들만 있다”고 혹평한 건 이 때문이다.
정국이 야권 뜻대로 흘러갈지는 의문이다. 12일 촛불집회에 소속 의원 전원 참여 여부조차 단일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2선 퇴진’의 수위를 놓고도 중구난방이다. 야권 대선주자들은 대통령 탄핵과 하야에 대해서도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극과 극의 견해를 쏟아내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 강경론만을 고집할 경우 국정혼란 수습을 외면한다는 비난 여론에 직면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외교·안보, 경제 분야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정국 안정을 바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1521명 대상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2.5%p)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지율은 모두 하락했다. 리얼미터는 “야권은 대통령에 대한 비판 외에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야권은 대통령에게 요구만 계속 늘어놓을 게 아니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총리의 권한과 내각 임면권 등에 대한 해법을 먼저 명확히 해야 한다. 또 4월 또는 6월 조기 대선이 됐든 원래 예정된 내년 12월 대선이 됐든 향후 정국의 로드맵을 국민들에게 내놓는 게 옳다. 박 대통령은 하야 즉시 구속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 쉽게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퇴진 마스터플랜’이 필요한 것이다.
국회는 대통령과 더불어 대한민국 선출 권력의 양대 축이다. 촛불을 드는 것은 정치인 개인의 자유지만 국정 수습의 책임도 함께 들어야 한다. 18대 대선을 한 해 앞둔 2011년 친이계 지도부가 몰락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내분 사태를 다시 기억해보라. 꽃놀이패로 여겼던 야권은 보수층 결집으로 정권을 되찾지 못한 5년전의 ‘악몽’을 되새겨볼 때다. 거대 야권에 걸맞은 거인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사설] 야당, 언제까지 이래라저래라 요구만 할 건가
입력 2016-11-10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