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조준 <10> 전도요원 양성 매진… 새 신자 발길 넘쳐나

입력 2016-11-10 21:18
1980년 주일 예배를 마친 뒤 예배당 앞에서 한경직 원로목사(왼쪽) 등과 함께 포즈를 취한 필자(오른쪽).

담임목사를 맡은 뒤 심혈을 기울인 것은 말씀 선포였다.

담임목사 신분으로 강단 설교를 시작했더니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났다. 하나는 “박 목사 설교를 듣다보면 (한경직) 원로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 같다.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는 평이었다. 평소에 한경직 목사님의 방송 설교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닮게 된 것을 인정한다. 또 다른 반응은 “새로운 목회자가 섰으면 원로목사님과는 다른 스타일의 설교를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평가 사이에서 고민하며 기도했다.

30년 가까이 들어오던 원로목사님의 설교가 익숙한 성도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갑자기 다른 스타일의 설교를 하면 이질감을 느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너무 똑같은 스타일의 설교를 계속하면 분명 식상해할 텐데….

나는 5년을 목표로 변화를 차근차근 시도했다. 교인들이 받아들이기에 변한 것 같기도 하고 그대로인 것 같기도 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만의 설교 스타일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원로목사님의 설교 스타일과 똑같다는 평이 사라졌다.

말씀 선포에 주력하는 다른 한편으로는 교인들을 전도요원으로 훈련시키는 일에 힘을 쏟았다. 전 교인을 전도요원으로 양성하는 일이었다. 교재를 준비해서 한번에 120명씩 교육시키며 구원의 확신을 강의했다. 확신이 있어야 전도의 열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어 전도 방법과 요령을 가르쳤다.

교육을 거듭하는 동안 교인들의 참여 의식이 날로 높아져서 교인들 중에는 전도 훈련생 모집을 기다리는 이들이 나올 정도였다. 말하자면 교회에 전도의 붐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매 주일 새 식구가 늘어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교인들은 전도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교회 리더가 바뀌면 이런저런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교인들이 전임자와 후임자의 목회 방식을 비교하기 때문이다. 영락교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전도요원 훈련에 매진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교회에 오면 매 주일 새신자로 등록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예배에 늦지 않으려고 뛰어오는 이들도 인상적이었다. 예배당에 들어오면 앉을 자리가 없어서 부속 건물로 들어가 TV화면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환경이 되자 교회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교회가 부흥하면 잡음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교회가 부흥하자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매 주일 늘어나는 새 식구를 어떻게 수용할지가 문제였다. 세 차례 드리던 주일아침 예배를 4, 5회로 늘려도 자리가 부족했다. 당회는 예배당 규모를 2배로 늘려 개축키로 했다. 개축을 결정하기까지 교회는 또 다른 진통을 겪었다.

한쪽은 “북한에서 내려와 피와 눈물, 땀과 정성으로 지은 예배당에 어떻게 손을 대느냐”라며 반대했다. 더구나 이 예배당은 원로목사님이 심혈을 기울여 지으신 것인데 원로목사님이 계신 상황에서 손을 대면 목사님이 섭섭해 하시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실제 피난민 출신의 성도들 중에는 영락교회 예배당 건물만 봐도 은혜가 되고 마음의 평화를 느끼며 사랑스러워하셨던 할머니들이 계셨다. 그런 정서를 잘 아는 나 역시 교회에 손대길 원치 않았다. 그래서 한경직 원로목사님을 찾아갔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