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이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되는 시대에, 뭐든지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시대에 자기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목공이나 도예, 가죽공예를 하는 사람들, 술을 담그고 잼을 만들고 화장품을 만들어 쓰는 사람들, 집 짓기에 도전하고 3D 프린터를 이용해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 골목마다 공방들이 생겨나고, 벼룩시장엔 핸드메이드가 가득하다.
‘손의 모험’은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을 뜻하는 ‘메이커스(makers)’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동안 만들기 붐은 취미, 또는 복고적 유행이라는 관점에서 조명돼 왔지만, 이 책은 만들기를 이 시대의 중요한 문화 현상으로 바라보면서 감각의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삶의 본질을 찾으려는 열망으로, 또 소비사회의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으로 정의한다.
만들기는 손의 감각을 깨운다. 손의 감각이 깨어난다는 것은 간단한 의미가 아니다. 미디어의 포위 속에서 지나치게 시각화됐던 우리 감각의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며, 손을 통해 익힌다는 것은 눈으로 배우는 것과는 명백히 다른 것이다. 또 내 삶 주변의 일들을 남들에게만 맡기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돌보는 경험, 일부나마 생산자나 제작자 입장에 서보는 경험은 구조와 관계에 대한 인식으로 이끈다.
“만들기에 몰입할 때 우리는 사물과 세계를 사용 설명서나 정형화된 지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직접 이해하는 경험을 얻게 된다.”
만들기는 주어진 선택지에서 골라 삶을 구성할 수밖에 없는 신세에서 벗어나 질문을 던지고 해결 방법을 찾고 다른 선택지를 창조해낼 가능성을 열어준다.
“굳이 많은 실패를 부르는 방법을 기꺼이 선택하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만들기는 산업화가 빼앗아간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공유하는 삶을 되찾으려는 시도와 연결된다. 거기에는 임금노동이 거세한 놀고 창조하는 기쁨을 회복하려는 열망이 들끓고 있다. 그리고 ‘노동-임금-소비’의 악순환에 갇힌 삶의 조건을 넘어서려는 도전을 낳는다.
우리는 이 시대가 “싼 물건을 과잉 생산하고 개인은 불필요한 소비를 종용당하는 시스템”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으며, 이것이 인간과 자연 양쪽 모두에게 공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가?”를 질문해 왔고, ‘윤리적 소비’를 그 답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만들기 문화는 “왜 소비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소비의 포박에서 풀려날 수만 있다면 다른 삶은 가능해진다.
“우리가 필요로 하고 의지하고 있는 것들을 스스로 생산할 능력이 있다면, 사회에서 낙오하거나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것은 곧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된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릴리쿰’이라는 메이커스 공간을 운영하는 30대 중반의 세 여성이 함께 쓴 이 책은 스스로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공들여 탐구한다. 윌리엄 모리스의 공예운동부터 이반 일리치의 소비사회 비판, 세르주 라투슈의 ‘계획적 진부화’ 개념, 한병철의 ‘피로사회’ 등이 불려나온다. 그들은 메이커스 운동이 가진 개인적이고 유희적인 측면과 사회적이고 대안적인 측면을 두루 조명한다. 특히 만들기가 개인적인 행위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공유와 연결, 연대의 방법이라는 점을 강조한 ‘만들기라는 공유지’, 잉여와 실패, 아마추어리즘 등을 만들기 문화의 키워드로 바라본 ‘잉여롭게 치열하게’ 등은 인상적이다.
이 책은 저자들이 메이커스로 살아온 경험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국내 사례가 풍부하게 소개돼 있고, 외국 흐름도 충실하게 전해준다.
“느리고 느슨하더라도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선택을 아직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만듦으로부터 얻는 기쁨, 그 안에 우리 삶의 본질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손’ 쓰는 삶… 소비로부터의 자유
입력 2016-11-10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