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트럼프 시대] 클린턴, 결국 마지막 ‘유리천장’을 못 깼다

입력 2016-11-09 18:28 수정 2016-11-09 21:41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여성이 8일(현지시간) 클린턴이 승리연설을 하려고 했던 뉴욕 제이컵 K 재비츠 컨벤션센터에서 뜻밖의 대선 패배 소식을 접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AP뉴시스

그의 도전은 이렇게 막을 내릴까. 엘리트 인권운동가 출신으로 최강대국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이자 상원의원, 국무장관까지 역임한 힐러리 클린턴(69)도 결국 마지막 유리천장을 깨지 못했다. 미 대선 결과가 발표된 9일(현지시간)을 마지막으로 ‘정치 초년생’ 도널드 트럼프에 패한 그의 정치인생도 끝을 맺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날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뉴욕에서 투표를 마친 클린턴은 9일 오전 대선 결과가 확정될 때까지 페닌슐라뉴욕 호텔에서 패배를 지켜봤다. 클린턴은 결과가 나온 직후 트럼프에게 축하전화를 걸어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충격이 컸는지 개표 결과 확정 직후 이어지기 마련인 패배 인정 연설마저 뒤로 미뤘다.

말 그대로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이날 클린턴 지지자 수천명은 투표를 마치고 ‘유리천장’이 있는 뉴욕 제이컵 K 재비츠 컨벤션센터에 승리를 자축하려 모였다. 출구조사 결과가 예상보다 박빙이었지만 승리를 의심하는 이는 드물었다.

개표 결과에서 트럼프가 경합주에서 클린턴을 앞서는 것으로 전해지고부터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시간이 흐르며 트럼프의 우세가 굳어갔다. 침울한 분위기로 대형 개표 중계화면을 응시하던 지지자 중엔 울음을 터뜨리는 이도 있었다. 차마 지켜보지 못하겠다는 듯 자리를 뜨는 지지자도 늘어갔다.

클린턴을 지지한 정치인들도 당혹 속에 침묵을 지켰다. 함께 민주당 경선에 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비롯해 남편 빌과 딸 첼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주변 인사도 말을 아끼고 있다. 마지막까지 클린턴을 위해 투표를 독려했던 백악관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클린턴은 20대 무렵 베트남전 반대와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주도하며 진보진영에 이름을 알렸다. 남편의 백악관 입성 뒤에도 여성인권 활동을 계속했다. 퍼스트레이디 신분이던 1995년 유엔 여성회의 총회에서 한 “여권이 곧 인권”이란 연설은 여성인권 운동사에 남을 명연설이자 구호로 꼽힌다.

이후에도 여성 최초로 뉴욕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남편의 섹스스캔들과 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 패배 등 시련도 겪었으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하며 ‘준비된 대통령’의 이미지를 쌓아나갔다.

그러나 오랜 정치이력은 외려 백악관 문턱에서 발목을 잡았다. 정치생활 중 이라크전 참전에 찬성한 과거와 이메일 스캔들 등이 ‘위선자’ 이미지를 두텁게 했다. 고액 강연과 재단을 통해 수천억원대 부를 쌓은 점도 공격거리가 됐다. 경선에서 샌더스 후보를 만나 고전한 것도, 결국 대권에서 미끄러진 것도 정치를 계속하며 쌓인 기득권 이미지 때문이었다. 건강 문제와 막판에 터진 연방수사국(FBI)의 이메일 게이트 재수사도 낙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패배로 클린턴은 영욕의 정치인생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고령인 데다 대권 도전에서 2차례나 무릎 꿇은 만큼 재기가 힘들다는 평가가 많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