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관계 파고 헤쳐나갈 컨트롤 타워가 안 보인다

입력 2016-11-09 19:01
2016 미국의 선택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아닌 ‘강한 미국 재건’을 앞세운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였다.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는 8일(현지시간) 미국 50개 주 전역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 예상을 뒤엎는 결과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트럼프의 당선은 미증유의 불확실성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외교·안보·경제 분야 등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큰 우리나라로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제로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제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적인’ 미국은 지워버리고 국가전략을 새롭게 짜야 한다. 조속히 관계부처들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부문별 파장을 최소화하는 대책을 마련해야겠다.

당장 우려되는 것은 북한에 대한 고립정책이 강화될 것이란 점이다. 북한 김정은은 5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핵무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트럼프 역시 ‘강 대 강’으로 맞서 한반도는 일촉즉발 화약고로 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는 그동안 한국이나 일본 등이 핵무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트럼프는 안보 무임승차론을 거론하며 주한미군 철수 검토 같은 극단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막대한 재정적자로 방위비 삭감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주한미군 철수 같은 극단적 카드는 아니더라도 주한미군 주둔비용 현실화를 내세워 비용부담 증액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또 트럼프는 국외 미군 주둔비용을 모두 주둔국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한미군 주둔의 목적이 한국 방위보다 동북아에서 미국의 경제·정치·군사적 이익을 보호하려는 데 있음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2011년 중국 견제를 위한 ‘재균형 정책’을 공식화한 뒤 호주 필리핀 등에 미군을 순환배치하고 있다. 주한미군도 2006년 1월 한·미 정부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이후 한반도 방위만을 위한 붙박이군 성격을 벗어난 지 오래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것은 물론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을 믿고 투자했던 외국 자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 9일 코스피가 45포인트나 폭락하며 패닉 장세를 보인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핵을 손에 쥔 북한 김정은의 도발이 잦아지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안보 분야에 트럼프 인맥이 거의 전무한 것도 우리로선 악재다. 미국의 주장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을 치밀하고 정교한 대책이 시급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누가 당선돼도 한·미동맹 강화 기조가 계속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트럼프가 돌출행동을 일삼아온 점을 감안하면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시대는 세계경제를 이끌어왔던 미국이 신고립주의로 갈 가능성을 예고한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경제가 혼돈에 빠진 상황에서 자유무역주의를 반대하는 트럼프 당선으로 한국경제는 사면초가에 놓였다. 우선 세계경제에 1차적 쇼크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표방한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반대하고 기존 무역협정에 대해서도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가능성도 커졌다. 트럼프는 당내 경선 후보 때부터 미국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겼다며 한·미 FTA 재협상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클린턴이 당선되는 것보다 한국 수출 손실과 일자리 감소 규모가 2배 이상 커지는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정책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2019년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실업률은 8%를 초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동안 세계경제를 이끌어오던 미국경제가 주춤하게 되면 세계 교역 감소와 함께 대미 수출도 크게 줄어들어 우리 경제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트럼프 당선 이후 연말로 미뤄졌던 미국 금리 인상 여부 등 대외 환경도 매우 불투명해졌다.

더 큰 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 때와 비교될 정도로 대한민국은 풍전등화 신세인데 이를 헤쳐나갈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로 5%까지 지지율이 떨어져 사실상 식물 대통령인데다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할 나라의 지도자도 눈에 띄지 않는다. 촛불집회에 동참하겠다고 나선 야당의 모습도 위기를 헤쳐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주기엔 미흡하다.

트럼프 시대에 맞춰 한·미관계 모든 분야의 정책을 재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외교·안보정책을 다시 짜고 대외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탈바꿈하는 일대 대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