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도피했던 차은택(47)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지난 8일 체포되면서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에서 겉으로 드러난 ‘주역’들은 모두 검찰의 손에 넘어갔다. 최순실(60·구속)씨와 안종범(57·구속)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대기업 상대 강제모금과 관련해 입건됐다. 정호성(47·구속)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최씨에게 기밀 문건이 유출되는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지목돼 구치소에 있다.
검찰은 최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주역’들의 범죄사실에 박근혜 대통령의 개입이 있었는지 살피고 있다. 8일에는 대통령 수사를 앞둔 상황을 ‘일모도원’(日暮途遠·날은 저물고 길은 멀다)이란 고사성어에 빗대면서 ‘시간과의 싸움’을 시사했다. 이 말은 ‘도리에 어긋나더라도 무릅쓰겠다’는 의미로 통하기도 한다.
검찰 수사는 박 대통령을 향해 한걸음 다가섰다. 검찰은 8일 심야에 체포해 밤샘 조사한 차씨를 서울구치소에 돌려보낸 지 4시간30분 만인 9일 오전 다시 불러 조사했다. 차씨가 박근혜정부의 각종 문화사업에 개입할 수 있었던 배경도 조사했다. 검찰 관계자는 “차씨가 큰 줄기에서는 혐의를 부인하지 않는다. 진술 태도가 썩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낸 대기업 관계자들의 소환 조사도 계속됐다. 청와대와 정부 고위층의 압력이 있었는지를 판단하려는 과정으로 풀이된다. 앞서 박 대통령이 지난해 하반기 대기업 총수들을 호텔에서 만나 자금 출연을 요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여러 대기업은 국정농단 사태 이후 피해자를 자처하고 있고, 공통적으로 “검찰에 소상히 밝히고 있다”는 입장이다.
삼성이 정유라(20)씨의 승마 활동을 지원하는 과정에도 청와대 고위층의 압박이 있었다는 의혹이 있다(국민일보 11월 9일자 1·4면 보도). 재계에선 삼성이 280만 유로(35억원) 정도의 금액을 쓸 정도라면 대한승마협회나 문화체육관광부 제안으로는 어림없었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박 대통령은 범죄혐의가 소명된 최씨를 두고 ‘최악의 배신’이라며 연결선을 끊었지만, 최씨 역시 박 대통령의 두 번째 대국민 사과 이후 검찰에 억울함을 토로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수사의 핵심은 결국 대통령이 정당한 국가정책을 수행한 것인지, 이 범위를 넘어 ‘비선’의 사익 추구를 도운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이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일정이 기록된 다이어리를 안 전 수석으로부터 제출받았다. 박 대통령의 업무지시가 담긴 통화내용을 정 전 비서관으로부터 압수해 분석했다.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혀온 ‘문고리 3인방’의 자택도 모두 압수수색했다.
다만 초유의 현직 대통령 수사가 벌어지더라도 통상의 형사 피의자와는 극명히 구분될 것으로 보인다. 김현웅 법무장관은 지난 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대통령) 수사 방법에 대해서도 논의가 많이 되고 있는데, 체포·구금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통설”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은 “압수수색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다수설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
멍석 깔린 ‘대통령 수사’… 이젠 檢에 달렸다
입력 2016-11-10 00:53 수정 2016-11-10 0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