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의 새 주인으로 들어서게 되면서 국내 산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 ‘미국 우선주의’가 한국 등 주요 교역국에 대한 통상압박 강화로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세계경기 회복에도 부담으로 작용해 수출에 의존하는 국내 업체들의 사업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산업계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당장 한·미 FTA가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한·미 FTA에 대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는 협정(job killing trade deal)”이라고 혹평했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FTA 재협상으로 양허정지가 이뤄질 경우 한국은 2017∼2021년 5년간 269억 달러의 수출 손실을 입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여기에 미국 산업 보호를 위해 반덤핑·세이프가드 등 무역구제 조치 요구가 증가할 경우 손실 폭은 더 커질 전망이다.
한경연은 한·미 FTA의 혜택을 보고 있는 자동차산업의 수출 손실이 133억 달러로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내다봤다. 손실은 미국에 공장을 두고 현지생산하지 않는 업체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완성차 제조기업 A사 관계자는 9일 “미국이 자국 기업 우대 정책을 강화할 경우 한국의 자동차 및 부품 대미 수출은 감소할 것”이라며 “특히 미국 현지에 생산공장이 없다면 미국 기업과의 거래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계, ICT, 철강, 가전, 섬유 등 주요 수출산업도 손실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코트라는 “트럼프가 여러 조치를 통해 중국 및 한국으로부터의 수입 장벽을 높일 것으로 보여 통신기기 시장과 통신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경우 주요 업종인 스마트폰 생산공장이 베트남에 집중돼 있어 향후 제품 수출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철강업계도 미국산 제품 이용을 의무화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규정이 강화될 것으로 보여 수출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는 “정부와 기업은 트럼프 선거공약의 실행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석유화학 업계는 트럼프 당선 영향이 비교적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보복관세 부과 등이 악재로 작용할 수 있지만 중국에 비해 대미(對美) 직접수출 물량은 작은 규모라는 설명이다. 또 단기간 유가 하락은 불가피하지만 중장기적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무역구제 조치가 중국산 수입 제품을 겨냥하고 있어 중국에 진출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기업들에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신재생에너지산업의 경우 트럼프가 ‘사기(hoax)’라고 표현하며 공공연히 반감을 드러낸 만큼 태양광 등 관련 수출 기업들의 타격이 우려된다.
반면 트럼프의 당선이 호재가 될 수 있는 업종도 있다. 공공 인프라와 전통 에너지, 의료 관련 산업이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임기 동안 1조 달러에 달하는 공공 인프라 투자를 공언해 왔다. 이에 따라 건설업·통신인프라·운송·건설기자재 분야 수요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미국 공공보건 시스템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해외 의약품 수입 개방을 강조한 만큼 국내 의약품 수출 기업들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일부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통상정책이 의회의 동의를 얻기 힘들어 일부 과격한 공약은 상당 부분 조정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글=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美 트럼프 시대] 한·미 FTA 흔들릴 수도… 자동차산업 최대 타격
입력 2016-11-09 18:54 수정 2016-11-09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