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 장구’… 백승호·이승우, 레벨이 달랐다

입력 2016-11-09 18:59
백승호(왼쪽)가 지난 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2016 U-19 수원 컨티넨탈컵 1차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3-1을 만드는 쐐기골을 터뜨린 뒤 FC 바르셀로나의 동료 이승우의 축하를 받으며 포효하고 있다. 뉴시스

예전부터 한국 축구 대표팀은 ‘쌍두마차’ 체제로 굴러갔다. 1970년대 김호-김정남, 1980년대 차범근-허정무, 1990년대 황선홍-홍명보, 2000년대 박지성-이영표, 현재 손흥민-기성용은 당대를 대표하는 쌍두마차로 꼽힌다.

한국 축구의 쌍두마차 계보를 이을 두 선수로는 ‘바르셀로나 듀오’ 백승호(19)-이승우(18)가 있다. 둘은 2016 U-19 수원 컨티넨탈컵에서 한 차원 높은 경기력을 과시하며 나란히 득점포를 터뜨렸다.

한국 U-19 대표팀은 지난 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 강호 이란과의 대회 1차전에서 3대 1로 이겼다. 이승우와 백승호는 선발 명단에서 빠진 채 벤치에서 대기했다. 후반 시작과 함께 4-3-3 포메이션에서 왼쪽 날개로 투입된 이승우는 거침없는 돌파와 날카로운 패스로 이란 수비진을 괴롭혔다. 리더십이 강한 그는 팀 동료들과 활발하게 대화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후반 19분 이승우는 조영욱의 침투패스를 받아 페널티지역으로 치고 들어가면서 상대의 파울을 유도했다.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키커로 나선 이승우는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켰다.

미드필더 백승호의 활약도 돋보였다. 이번 시즌 초반 왼쪽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백승호는 후반 27분 교체 투입됐다. 백승호는 이승우, 조영욱, 박상혁 등 공격진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한국형 티키타카(짧은 패스 위주의 점유율 축구)를 선보였다. 후반 추가시간엔 이승우의 크로스를 슈팅으로 연결해 쐐기골을 뽑아내며 해결사 기질도 과시했다.

백승호와 이승우는 ‘정정용 축구’에 쉽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익수 감독의 뒤를 이어 임시로 지휘봉을 잡은 정정용 감독은 지난 1일부터 일주일 동안 경남 양산에서 훈련을 이끌며 대표팀의 체질을 바꾸기 시작했다. ‘안익수호’는 선수비-후역습을 바탕으로 한 축구를 했다. 반면 정 감독은 짧고 빠른 패스와 전방 압박, 볼 소유를 강조하는 공격축구를 추구한다. 티키타카로 유명한 바르셀로나에서 잔뼈가 굵은 이승우와 백승호가 ‘정정용호’에서 펄펄 나는 이유다. 경기 후 백승호는 “대표팀이 바르셀로나 같은 축구를 한다”며 “수비축구보다는 공격축구를 선호한다. 빠르고 공격적인 축구를 하니 잘 풀렸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승우도 “즐기면서 경기를 했다. (정정용 감독의 스타일이) 공격축구고, 내 스타일도 공격적이다 보니 나와 맞는 플레이였다”고 했다.

이승우와 백승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도드라진 활약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백승호는 2010년, 이승우는 2011년에 바르셀로나 유소년 시스템인 ‘라 마시아’에 입단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두 선수는 모두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피드와 화려한 기술로 그라운드를 휘젓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둘의 스타일은 엇갈렸다. 백승호는 스트라이커와 윙어로 뛰다가 키가 커짐에 따라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스피드, 위치 선정, 슈팅력 등 삼박자를 고루 갖춘 백승호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제격이다. 백승호의 플레이는 바르셀로나 성인팀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를 연상시킨다. 동료들에게 볼을 배급하고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는 이니에스타는 바르셀로나에서 ‘중원 사령관’과 같은 존재다.

볼 컨트롤이 좋고, 예측불가의 플레이에 능한 이승우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짜 9번으로 키워지고 있다. 이승우는 지난해 10월 열린 U-17 칠레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팀플레이에서 겉도는 모습을 보였다. 이승우는 스페인에서 활동하며 패스 플레이, 점유율 축구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패스와 점유율보다 수비를 먼저 단단히 하고 역습을 노리는 스타일이어서 이승우는 대표팀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이승우는 이제 정정용호에서 더욱 빛나는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백승호와 이승우가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남은 2경기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 10일 오후 5시에 잉글랜드와 2차전을, 12일 오후 7시 30분에 나이지리아와 3차전을 치른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