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 수 있다.’
지난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펜싱 에페종목 결승전에서 박상영 선수가 브레이크타임에 혼자 읊조리던 말이다. 결연한 각오를 다지던 그는 기어이 금메달을 따냈다. 그 순간 대한민국 전역은 큰 박수를 보냈다.
스포츠란 그런 거다. 인간이 가진 극한의 능력을 경기장에 모두 쏟아내는 것 말이다. 정정당당하게 상대방에게 맞서고 혼신을 다한 뒤 승패에 승복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스포츠를 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행여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지, 한계에 직면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다 쏟아부었는지 말이다.
2018년 2월이면 한국에선 사상 최초의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린다. 그런데 요즘 체육계에선 “동계올림픽을 진짜 치를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최순실·정유라·차은택·김종’ 때문이다.
최순실 사태로 가장 벌집이 된 정부부처는 단연 문화체육관광부다. 박근혜정부 들어 문체부가 행한 모든 정책이 이들 네 명에 의해 좌지우지되다시피 했다. 문화 분야도 그렇지만, 체육 분야는 더 심하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 단 한 명을 위해 한국승마협회는 존재했고, 승마협회를 관장하는 문체부 전체가 그랬다. 그리고 이들의 국정농단이 발각되자, 대한민국 체육행정은 올스톱됐다.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올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30년 동안 단 한번도 이긴 적이 없는 일본을 세계선수권에서 물리쳤고, 유로 아이스하키챌린지 대회에선 유럽 강국들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요즘 관심사는 핵심 수비수로 꼽히는 알렉스 플란트의 귀화 문제다. 캐나다 출신으로 최강의 아이스하키 리그인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드래프트 1라운드로 명문 에드먼튼 오일러스에 지명됐던 플란트를 반드시 귀화시켜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플란트의 귀화 신청에는 반드시 문체부 추천이 필요하다. 귀화 승인은 법무부가 하지만, 특정 외국인의 ‘특별 귀화’를 위해선 관장 정부부처의 추천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아무리 문체부에 문의를 해도 대답을 해주는 이가 없다고 한다. 체육담당 부서들이 아예 업무에서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스하키가 이 꼴인데 동계스포츠 인기 종목인 쇼트트랙 빙상이나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인들 정상적인 행정이 이뤄질 리 없다. 물론 평창동계올림픽준비위원회도 마찬가지다. 동계올림픽 홍보는커녕 아직 경기장 시설조차 다 짓지 못했는데 올림픽준비위마저 ‘최순실 외압’ 논란에 빠져 있다. 동계올림픽 각종 시설 건설에 대한 최씨 모녀와 차은택의 이권개입 의혹, 올림픽준비위원장 인선에 대한 개입 소문이 기정사실화됐다.
이러다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대한민국이란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아니라, ‘동계올림픽조차 개최할 능력이 없는 나라’라는 악평을 얻는 시기가 될지 모른다.
아무도 책임지는 자가 없고, 책임지는 기관이 없다. 공무원들은 바짝 엎드려 최순실 사태의 여파가 미치지 않기만 바라며 복지부동에 빠져 있다. 당당하게 나서서 ‘이건 반드시 해야 되고, 저건 절대 안 된다’고 말하고 결정하는 이가 없다.
스포츠에는 늘 휴먼스토리가 있다. 그래서 선수는 혼신을 다하고, 관객은 감동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다른 삶에서의 힘을 얻는다. 문체부라는 행정 부처가 존재하는 이유도 이런 스포츠의 정신을 관장해 ‘국민행복’에 기여하기 위해서다. 국민행복증진에 목적을 두고 있는 체육행정을 과연 문체부에 맡겨도 되는건지 잘 모르겠다.
신창호 스포츠레저부장
procol@kmib.co.kr
[데스크시각-신창호] 스포츠정신 상실한 체육행정
입력 2016-11-09 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