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그러나 너는!

입력 2016-11-09 21:02

바울은 아마도 사형선고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로마의 감옥에 두 번째로 투옥되었고,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하는 예심 성격의 청문회에서 구리 세공인 알렉산더가 결정적인 배신의 증언을 함에 따라 최종적으로 사형이 언도되었습니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딤후 4:14).

친구들은 그를 다 버렸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복음을 전하며 좋아했던 데마도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떠났습니다(4:10). 사람들이 다 떠났습니다. 그 외로움으로도 충분히 힘듭니다. 그런데 로마 지하 감옥의 무시무시한 추위는 그를 엄청나게 고통스럽게 했지요.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빨리 외투를 가져오라고 합니다(4:13). 얼어 죽을 것 같았지요. 책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정말 외롭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이 시기의 바울은 더 이상 기독교계에서 가장 추앙받는 최고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계의 율법주의 이단은 그를 평생 괴롭혔고 마지막에는 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까지 마수를 뻗쳤습니다. 게다가 기독교 내부에는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은 기이한 이단이 세력을 점점 넓혀가고 있었지요.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자들마저 점점 경건에서 멀어졌습니다(딤후 3:2∼5).

많은 사람들에게 경건이 사라지고 있을 때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러나 너는!”이라며 다르게 살라고 합니다. 디모데후서에 세 번 기록된 ‘그러나 너는’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살아야 할 자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이 정도의 거짓말은 하고 삽니다. 이렇게까지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은 너무 심한 광신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러나 너는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나도 그렇게 살았다!”

“다른 수많은 학생 그리스도인들이 커닝을 합니다. 그러니까 저도 이 정도 부정은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너는! 너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학문과 학업생활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해야 한다!”

“다른 직장에 다니는 그리스도인들도 이 정도는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너는! 망할지라도 정도를 추구해야 한다. 직장에서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 한다!”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도 이혼을 합니다. 살다가 맞지 않으면 헤어질 수도 있지요. 오히려 더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악한 일 아닙니까. 이혼을 하는 것이 차라리 덜한 악이 아닙니까.” “그러나 너는! 네 배우자를 사랑해야 한다. 언약이 사랑을 지키는 것이지 사랑이 언약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오늘 본문은 전합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 3:14)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5)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그러니까”를 외치는 시대에 “그러나”를 살라고 말입니다. 난 그리 살아왔노라고 이 늙은 사도는 젊은 디모데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는! 그러나 너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니까’를 살아갈지, ‘그러나’를 살아갈지 결단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세상과 다르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구한단 말입니까.


이정규 목사 (서울 시광교회)


약력=△1978년 경기도 성남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졸업

정리=강주화 기자